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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1:1-16
제목: 족보 속에 담긴 은혜

마태복음 1:1-16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리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성탄절이 다가오면 우리는 보통 누가복음 2장에 나오는 천사들의 찬양, 말구유, 목자들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마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서론으로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제시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족보는 읽기도 어렵고,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의도적으로 족보로 성탄의 기쁜 소식을 시작합니다. 마태에게 족보는 단순한 이름의 나열이 아니라, 성탄의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신학적인 도구로 생각하였습니다. 마태는 이 족보를 통해 예수가 역사 속에서 실질적으로 누구신지를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저 역시 이것을 깨닫고, 족보를 통해 성탄의 의미를 좀더 깊은 전달하고자 합니다. 그로 인해 여러분 모두가 성탄의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1.1) “계보”라는 말에 담긴 의미
계보라는 말은 “기원의 책” 곧 족보 기록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새 창조의 시작”을 선언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장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새 역사를 선포하는 선언문과 같습니다. 
마치 모세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알려 주기 위해 창세기를를 기록한 것처럼,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시작된 새 하나님의 백성의 기원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아담으로 시작된 인류와 죄의 시작을 알려 주었다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시작되는 새 인류와 구원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창세기가 아담에서 시작하여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보여 준다면, 마태복음은 예수로 시작된 영생과 구원의 역사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새 시대와 새 인류를 시작하러 오신 마지막 아담이십니다. 

1.2) ”아브라함의 자손“에 담긴 약속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12:3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는 약속과 창세기 22:18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라는 약속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듯이, 우리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 아브라함의 약속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 약속이 성취된 것을 기념하는 날이 바로 성탄입니다.

1.3) “다윗의 자손”에 담긴 약속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라는 약속이 성취된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 왕들이 타락하고 배교하였고, 이스라엘이 멸망하며 성전이 무너졌음에도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성탄은 어느날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수천 년의 시간을 거쳐 준비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하나님이 약속을 잊지 않으신다”는 증거입니다.

2. 성탄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정결하고 도덕적인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유익이 바로 이것입니다. 특별히 족보에 포함되어 있는 네 명의 여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조건 없는 사랑임을 알려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유대인의 족보에는 보통 여성, 이방인, 문제가 있는 인물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족보를 미화하여 기록하고자 합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예가 용비어천가입니다. 용비어천가를 족보로 보기는 어렵지만, 새 왕조가 자신들의 권위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성계의 4대 조상을 왕으로 만들어 그들의 업적을 찬양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 예수를 소개하는 마태의 족보는 그렇지 않습니다. 죄인이며 이방인이며 사회적인 약자인 여자들을 포함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을 정직하게 기록한 이유는 어떤 인간의 죄도 더러움도 예수님의 거룩함을 오염시킬 수가 없으며, 바로 그런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이 땅에 오셨음을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3. 하나님의 은혜가 어떻게 역사하였는지를 족보에 나오는 네 명의 여인들과 이 여인들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3.1) 다말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습니다. 유다의 아들들은 불의한 자들이라 일찍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였기 때문에 다말은 남편과 자녀가 없었습니다. 유다는 자신의 두 아들이 죽은 원인을 다말에게 돌리고 친정으로 돌려 보내 과부로 살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다말은 자신을 창녀로 변장하여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를 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매우 복잡하고 상처 많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깨진 가정을 통해 메시아의 계보를 이어 가셨습니다.

3.2) 라합
라합은 여리고 성에 살던 이방인 창녀였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정탐꾼을 숨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녀의 과거가 아니라 믿음을 보시고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이방인 창녀였지만 이제 메시아의 계보에 있는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탄절에 전하는 구원의 메시지 입니다. 

3.3) 룻
룻은 모압 여인이며 과부였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시어머니를 섬기며 하나님을 신뢰했던 그녀는 하나님의 구원을 이어가는 다윗 가문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신명기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율법은 죄인을 배제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조건 없이 구원을 베풀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3.4) 밧세바
마태는 밧세바를 다윗의 아내로 소개하지 않고 우리야의 아내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다윗의 죄를 분명히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우리야는 다윗의 충성된 부하였습니다. 다윗이 어려울 때 함께하며 목숨을 걸고 다윗을 지켰던 37명의 용사 중 한 명이었습니다(삼하 23:39). 다윗이 왕이 된 후에도 우리야는 여전히 다윗과 이스라엘을 위해 충성되이 싸웠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보고 그녀를 원했고 동침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간음 죄를 덮기 위해 우리야를 전쟁터에 보내 죽게 했습니다. 우리는 다윗을 훌륭한 왕으로 칭송하지만, 실제로 그는 간음하고 그 간음을 숨기기 위해 충성된 신하를 죽인 죄인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죄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습니다. 
회개한 다윗을 하나님은 다시 세우셨고, 밧세바에게서 난 솔로몬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죄보다 더 큰 것임을 우리로 분명하게 볼 수 있게 합니다.

3.5) 적용입니다.
이와 같이 성탄은 완벽한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 아니라, 상처와 죄와 실패로 얽힌 역사 속으로 들어오사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실제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의 족보가 단지 읽기 어려운 부분으로 건너 뛰는 것이 아닌 분명한 역사적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과 넓고 깊고 높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성탄이 주는 기쁨 대신에 성탄절기에 물건을 사는 것에서 기쁨을 얻고자 한다면, 물질적인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계속해서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것에서 찾은 일시적인 기쁨이 성탄이 주는 참 기쁨을 대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물질적인 만족으로는 마음에 진정한 기쁨이 지속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만족이 사라진 마음은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으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반복하게 하는 악순환에 얽매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성탄의 기쁨은 더욱 사라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족보를 통해 주시는 성탄절 의미로부터 참 기쁨을 얻으셔서 그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4. 마무리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는 지루한 이름의 목록을 읽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말씀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족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는 성탄의 초대장입니다. ”너의 어떤 수치스럽고 더러운 죄까지도 나의 구원의 역사로 들어오라“라는 은혜로운 초대입니다. 
네 명의 여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초대가 참이라는 증거입니다. 유다와 다윗의 비도덕적인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족보에 포함된 것이 하나님의 초대가 얼마나 놀랍게 큰 것인지 알려주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성탄은 모든 죄인들과 소외된 자들에게 기쁨을 주는 하나님의 초대장인 것입니다.
또한 성탄은 대체될 수 없는 만족스러운 기쁨입니다. 성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올라가 얻고자 하는 사건을 알리는 뉴스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류의 가장 어두운 자리로 내려 오신 기쁜 소식 곧 복음입니다. 성탄은 하나님께서 수천 년 전에 약속하셨던 약속을 성취하시는 날이며, 나와 같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기쁨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속에 있는 은혜가 얼마나 중요한 증거인지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족보를 통해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유혹이 아닌 참된 성탄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에 마태복음 1장의 족보를 통해 오는 기쁨으로 충만하시어, 우리 주변의 이웃에게까지 흘러 넘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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