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2.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5:10-12, 베드로전서 4:12-19
제목: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10-12.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베드로전서 4:12-19.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잘못을 하면 당연히 비방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의를 따라 살기에 박해를 받습니다. 또한 9절의 화평하게 하는 자도 박해를 받을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박해는 숙명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박해를 받는 것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도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다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의 특성을 드러내는 복들과 다르게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기에 박해를 받은 적이 있고, 받을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는 박해를 받는 그리스도인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타 종교인들을 박해를 합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선거철에는 후보자들이 교회에 잘 보이기 위해 예배를 참석을 합니다. 물론 큰 교회 위주로 갑니다. 같은 형제자매로서가 아닌 표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은 교회에 반대되는 세력을 공격할 수 있는 후보자에게 표를 찍어 주도록 성도를 설득합니다. 출마한 대통령 후보자들은 표를 얻기 위해 교회를 비방하지 않습니다. 단지 미국의 복음주의자들처럼 스스로 박해를 받는 것처럼 생각하고 다른 이들을 선제공격하는 자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여러 곳에서 의를 위하여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성경은 박해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벧전4:12,13)”
1. 그러면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인가?
요한복음 15:18-20.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 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1) 우리는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공의와 정의 = 의)을 이루기 위해 살게 됩니다. 반면에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 속하여 (다른 나라에 속하여) 자기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어떤 것이든지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과 믿지 않는 자들은 근본적으로 삶의 가치관이 다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왕을 모시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에서 자기 자신을 왕으로 삼고, 이 세상의 가치관을 가진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나라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박해를 하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전하는 진리 때문에 박해가 오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말을 합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고 죽는 사람은 죽어서 지옥에 갈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그들이 정말로 듣고 싶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로 더 이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입을 막고자 박해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북한과 사우디아라비아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소지하거나 읽기만 해도 잡혀가서 사형까지도 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고 의로운 삶을 살고 있으므로 인해 박해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인은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을 죽였습니다. 사울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다니엘은 경건한 사람으로 자기의 직분을 충성되었습니다. 그의 대적들은 다니엘에게서 트집을 잡지 못하자, 그의 기도드리는 행위를 가지고 고소를 해서 사자 굴에 던져지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상은 신이 아님을 알리고자 바알 제사장들과 싸워 승리하였습니다. 악한 여인인 이사벨은 우상 숭배자를 죽인 선지자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에 의해 물이 없는 구덩이에 던져지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박해의 이유는 경건하게 사는 자들을 시기해서 한 일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의로운 자로 살고 있었기에 박해를 한 것입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 70마일 구간에서 70마일을 달리는 차에게 경적을 울리며 손가락을 올리고 지나 가는 운전자들과 같습니다. 경건되고 의롭게 사는 자들이 거울이 되어 자신의 죄를, 잘못을 더 잘 드러내게 하므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4) 심지어 같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다른 교파를 박해하기도 합니다.
종교 개혁의 시기에 종교 개혁자들은 "성경으로 돌아가자" (오직 성경 - 로마 교황의 권위가 아닌 성경이 기준이 되게 하자는 것),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와 오직 그리스도" (성인 숭배 거부),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인간 중심적인 교권을 거부) 등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종교 개혁자들이 로마 가톨릭에 의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정교회가 침례교회를 이단으로 정하고, 교회등록을 취소하고, 교회 건물에서 강제로 쫓아냈습니다. 독일 루터교회에서는 히틀러를 하나님이 주신 지도자라고 칭송을 하고, 히틀러를 거부하는 목사들은 교단에서 제명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교회가 고백교회입니다.
영국에서는 신앙의 대각성 운동이 있었을 당시에 조지 휘트필드 목사의 설교에 더 많은 이들이 모이는 것을 시기한 요한 웨슬리의 추종자들이 집회를 방해하고 비방하였습니다.
박해는 여러가지 이유와 상황으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가 받게 되는 박해가 모두 다 의를 위하여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편향적인 정치적 생각을 주장하다가 사람들에게 비방을 받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목사는 자기가 받는 비방을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박해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로 인해 다른 편의 사람에게서 받은 비방일 뿐입니다. 또다른 경우는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오는 비방입니다.
베드로전서 4:15-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오는 비방은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고난 받음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 되는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짧게 제가 받은 박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교회 출석을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성경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게 되어 두 가지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예배를 빠지지 않겠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집에서 하는 제사에 절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가 된 처음 제사가 바로 할머니 제사였습니다. 저는 장손이었기에 할머니가 늘 귀여워하고 먹을 것도 챙겨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사에서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제 아버님은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하셨습니다. 그 결과로 아버지는 저에게 더 이상 대학교 수업료도 주지 않을 것이며, 집에서 나가라는 통보를 하였습니다. 그후에도 두세 번 더 그러한 부딪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것은 학교를 오고가는 중에 버스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에게 전도를 하였습니다. 저의 전도를 받은 사람이나 옆에서 그것을 들은 누군가가 교회에 미친 사람이라 소문을 낸 것입니다. 그것을 동생들이 듣고 챙피하니 그런 일을 못하게 화를 낸 것입니다.
물론 저도 교회에 다니기 위한 핑계로 농사를 짓는 부모님을 도와주지 않은 적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한 잘못으로 교회가 비방을 받게 한 적이 있습니다.
2. 박해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면한 문제입니다.
누군가는 박해를 경험을 했고 다른 누군가는 조만간 박해를 경험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받을 박해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박해가 주는 유익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 나의 잘못한 행위나 언어로 인해 받는 박해가 아니라면, 내가 지금 받고 있는 박해는 나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려 주는 것이 됩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마태복음 5:12.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 하였느리라.
우리가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고 있을 때 우리는 옛날 하나님의 선지자들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베드로전서 4:12-14.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박해를 받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고 있는 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자임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2) 우리가 받는 박해는 우리가 우리 주님을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박해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는 제자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박해를 받으며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삶이 주님을 닮아가는 과정 중임을 알려 줍니다. 우리에게 온 박해는 우리가 주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살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3.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받는 자들에게 하늘에서 상을 크게 받을 것이라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에서 받게 되는 상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우리로 박해를 견디게 하며, 박해를 받는 중에도 기뻐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1) 먼저 상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첫째로, 어떤 사람이 “나는 상을 받기 원하는 동기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동기로 열심히 사는 것이다. 상을 바라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너무나 이기적이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순수하게 아무 상도 바라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을 겸손한 신앙인이라 착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주장은 분명하게 성경적이지 않은 자신의 주장일 뿐입니다. 거짓된 겸손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상을 주시겠다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에 대한 기대감이 없이는 우리가 받게 되는 박해를 잘 견디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상에 대한 잘못된 생각은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상을 판단하고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더 좋은 지위나 더 좋은 장소의 집을 받을 것이라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실 이 세상의 부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상을 기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이 세상 전부하고도 바꾸지 않을 좋은 것입니다.
2)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누가 받는 것인가?
먼저,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구원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죄인들에게 값없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을 주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으로 우리가 믿음의 싸움을 인내로 승리하도록 돕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맛보기로 우리가 간구를 통해 더 좋은 것으로 응답하여 주시기도 합니다. 기도로 응답을 받는 경험을 많이 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이 주실 상에 대한 기대감도 더욱 큽니다. 그들은 박해를 받음에도 받을 상에 대한 기대감이 더욱 커질 것입니다.
두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전부 동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9-10.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충성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에 맞는 상을 주실 것입니다.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자기에게 주신 사명을 마친 자들에게는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딤후4:7-8).
세번째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을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을 것이다. 종말에 하나님께서 불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한 사역들에 대해 시험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공적은 다 타버릴 것입니다. 그들은 간신히 자신만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은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13-15.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4. 마지막으로 상은 무엇인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박해를 받은 자들에게 하나님은 상을 주실 것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상이 정말로 무엇이기에 상을 받는 사람들에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 알아야 하는 것은 성경은 구체적으로 상은 이것이다 말해 주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실 상이 너무 엄청나서 이 세상의 것으로 구체적인 표현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주실 상이 우리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라면, 그것을 기록해 놓게 되면 우리는 상을 축소하거나 다른 것으로 오해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이 주시는 상은 우리에게 최고로 좋은 것일 것입니다. 물어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에게 가장 원하고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다윗은 시편 27:4에서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고 계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영광스럽고 웅대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럽고 가장 좋은 모든 것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상으로 온전하게 자신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보고자 하여도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 없지만 상을 받는 그때에는 하나님을 온전히 볼 것입니다.
물론 충성된 성도는 의의 면류관이나 생명의 면류관을 상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요. 성도에게 무엇보다 큰 상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상 주실 때에 우리는 온전하게 하나님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교제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가장 큰 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만나거든 기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장 복되고 선하고 사랑하는 분을 온전하게 드러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립니다. 성도들에게 박해나 환난이 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것이 무슨 형태나 무슨 종류이든지 그리고 그것이 크든지 작든지 관계없이 박해나 환난이 성도들에게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의 말씀으로 박해나 환난을 바라 보시고 승리하여 상을 받는 성도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17,18.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