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1/26 주일예배.
순종의 유익
본문: 누가복음 6장 45–49절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2026년 미국의 저명한 조사 기관인 바나 그룹(Barna Group)에서 아주 충격적이고도 뼈아픈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스스로 거듭났다고(Born-Again) 대답한 미국 기독교인들 가운데, 교회의 기본 가르침과 실제 도덕 및 관계 윤리가 완전히 일치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이 단 12%에 불과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Z세대(14-29세) 크리스천들입니다. 이들 중 교회의 윤리와 가르침을 자신의 삶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다고 대답한 비율은 고작 1%였습니다. 이 통계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습니까?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교회의 울타리 안에서는 거룩한 말을 하지만, 세상 속의 실제 삶에서는 그 가르침을 전혀 적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 미국 청소년과 청년들이 주변의 그리스도인들을 평가할 때 내린 답변은 더욱 뼈아픕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을 향해 "말과 삶이 달라 위선적(Hypocritical)이다"라고 평가한 비율이 무려 85%에 달했습니다.
세상은 지금 교회의 화려한 예배나 거창한 설교를 보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의 무너진 삶과 위선적인 모습에 깊은 실망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비단 오늘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 문제의 심각성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제자들이 이러한 허울뿐인 신앙, 위선적인 삶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바라시며 아주 생생하고도 강력한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두 종류의 건축자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두 종류의 건축자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한 사람은 땅을 깊이 파고 반석 위에 주추를 놓아 집을 짓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주추도 없이 흙 위에 그냥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두 사람이 지은 집의 외형은 차이가 없습니다. 예수님도 외형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유일하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집의 기초(주추)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즉, 내 말을 듣고 실천하는 참된 제자들이 되라는 준엄한 권고입니다.
오늘 이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귀로만 듣는 것에 머무르지 말고, 삶으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인생의 어떤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집을 건축하시기를 바랍니다.
1. 우리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삶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의 포도나무 비유처럼, 참 선한 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여진 거룩한 가지들입니다. 그러므로 선한 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답게 당연히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6장 46절부터 49절까지의 말씀은 바로 이 선한 열매를 맺는 삶을 '집을 건축하는 일'로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6절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집을 건축하고자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준비해야 하는 것은 집의 기초가 되는 튼튼한 반석입니다. 감사하게도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하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반석이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삶에서는 그 반석 위에 집을 건축하지 않는 신자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반석이신 예수님 대신에 흙과 모래와 같은 세상의 헛된 가치관 위에 자신의 인생 집을 지어 올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어리석은 신자들이 돌이키기를 원하시며, 모든 집은 반드시 ‘홍수와 탁류’라는 인생의 역경을 만나게 될 것이고 그때 그 결과가 어떻게 드러나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홍수가 와도 끄떡없이 견뎌내지만, 모래와 흙 위에 지은 집은 탁류가 부딪칠 때 무너짐이 심하여 결국 남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흙과 모래와 같은 세상의 가치관으로 삶의 집을 건축하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을 향해 "주여! 주여!" 부르짖지만, 정작 그분의 말씀은 삶에서 전혀 행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6장 17절부터 제자들이 이 땅을 살아가며 지켜야 할 놀라운 삶의 표준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원수를 사랑하며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에게 선을 베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사람을 향해 축복하고, 모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심으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고, 먼저 내 눈에 있는 들보를 보며 내 잘못을 살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을 때 제자들은 아마도 “아멘”으로 동의하고 기쁘게 순종하겠다고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갈 때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돈을 사랑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원수에게 철저히 보복하고자 합니다. 나를 미워하는 자를 나도 똑같이 미워하며 다시는 상종하지 않고, 나를 모욕한 자에게는 몇 배로 갚아주려 합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평생토록 주일을 지키며 예수님을 따라다닌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이 아니라 세상의 처세술과 기준을 따라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신자들은 모래나 흙 위에 위태로운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심각한 신뢰를 잃어버리고, 때로는 사회의 지탄과 민폐가 되는 이유도 이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서울의 한 대형 교회는 '사랑이 제일이라는 의미로“ 교회 이름의 사랑 제일로 삼았지만, 예수님의 긍휼과 사랑을 따라 살지 못하고 도리어 지역 주민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교회의 건축과 이기적인 행태로 인해 그 지역의 재개발이 8년이나 멈추어 섰고, 수많은 주민이 물질적·정신적인 막대한 피해를 보았습니다. 또 다른 대형 교회도 교회 이름이 ”사랑“입니다. 이 교회는 주차장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공용 부지를 무단으로 침해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맹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사랑을 베풀지 못하고 공공의 유익을 침해하였습니다.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입니까? 교회의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름에 ‘사랑’이 들어간 교회인데 사랑이 없고, ‘진리’가 들어간 교회인데 하나님의 진정한 말씀과 실천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이 같은 이중적인 행동을 보고 교회가 위선적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바로 그들을 향해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2. 우리는 이러한 말씀 불순종의 현상이 말세로 갈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성경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성경은 말세가 가까워질수록 많은 그리스도인과 교회들이 주님의 거룩한 이름을 부르기만 할 뿐, 실제적인 순종의 삶을 멀리하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여러분, 지금이 바로 성경에서 경고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말세가 아니겠습니까? 뉴스를 보거나 세상의 풍조를 바라보면 주님이 오실 날이 훨씬 더 가까워졌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 세상이 악해지고 불순종이 만연할수록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등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며 탄식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러움이 없는 진실한 믿음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3. 그렇다면 인생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집을 짓는 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예수님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6장 47절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인생의 풍파 속에서 승리하는 자는 세 가지 거룩한 행동 단계를 밟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 나아오는 것이요, 둘째는 그분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는 것이며, 셋째는 들은 그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무엇보다도 예수께 나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을 듣지 않고는 믿음의 집을 건축하는 일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대부분의 성도님들은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깁니다. 참으로 훌륭하고 귀한 자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말씀을 듣는 것은 비유하자면 집을 짓기 위해 건축 자재를 쌓아두고 출발점에 선 것에 불과합니다. 아직 집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집을 짓고자 하는 거룩한 마음의 준비를 마친 상태일 뿐입니다. 아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튼튼한 믿음의 집이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이들은 성경을 많이 읽고, 설교를 수없이 듣고, 신학적인 지식을 많이 쌓은 것으로 자신이 집을 다 완성했다고 착각하곤 합니다. 특히 목회자나 신학교 교수들, 혹은 성경 다독을 자랑하는 성도들이 이러한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기 쉽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집을 짓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 믿음의 집은 단번에 뚝딱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평생에 걸쳐 매일의 삶 속에서 조금씩 순종의 벽돌을 쌓아 올리며 완성해 나가는 집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말하는 “땅을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다”는 말씀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법조문처럼 문자 그대로 기계적으로 지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이 순종이라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반석 위에 가장 완벽한 집을 지은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고 십일조를 완벽하게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단 한 번도 칭찬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말씀을 문자로만 붙들었지, 그 말씀의 본질인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따라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장 15절에서 명백히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계명을 지키는 모든 참된 행위는 오직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진정한 뜻을 깨닫고, 그 뜻에 감격하여 기쁨으로 행하는 사람이 바로 반석 위에 집을 건축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지은 집은 세상의 어떤 탁류와 환난이 밀려와도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4. 두 집에 동일한 폭풍우가 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6장 48-49절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뉴스를 통해 때로는 미국의 해안가 모래 위에 수십억 원을 주고 지은 화려한 저택들이 거센 폭우와 해일 속에 비참하게 쓸려 내려가는 모습을 보며 큰 충격을 받습니다. 반면에 어떤 집들은 똑같은 폭우 속에서도 기초가 튼튼하여 끄떡없이 버텨내는 것을 봅니다.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고 주목해야 할 아주 중요한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이나 똑같이 ‘큰물과 탁류’라는 인생의 폭풍우를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산다고 해서 우리 삶에 인생의 고난과 아픔이 아예 비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순종하는 성도 역시 순종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처럼 불치병에 걸릴 수 있고, 사업이 어려워져 경제적인 막대한 위기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가정 안에서 심각한 갈등을 겪거나, 인간관계 속에서 뼈저린 아픔과 배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기 때문에 세상과의 마찰 속에서 더 많은 고난과 핍박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순종은 인생의 폭풍우가 아예 오지 않게 막아주는 방패가 아닙니다. 순종은 폭풍이 몰아쳤을 때, 그 거센 파도에 우리의 믿음의 집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가장 견고한 기초가 됩니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온 사람은, 삶의 위기와 고난이 찾아올 때 주님의 약속 위에 굳건히 서게 됩니다. 비록 눈앞의 현실 때문에 두려움과 낙심이 찾아올지라도, 하나님께서 베푸실 위로를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용기를 내어 인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말씀을 순종할 때 주시는 하늘의 기쁨을 수없이 맛보았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의 순간에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한 약속을 삶으로 깊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 영혼에 부어지는 거룩한 기쁨은 우리가 만나는 어떤 인생의 폭풍우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찬송을 부르게 만듭니다.
감리교의 위대한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John Wesley)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그는 1736년 미국으로 선교를 떠나는 배를 타고 대서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던 중, 거대하고 끔찍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집장만 한 거대한 파도가 배를 사정없이 내리쳤고, 돛이 찢어졌으며, 바닷물이 갑판을 넘어 객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배에 탄 모든 승객은 이러다간 다 죽겠구나 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비명을 지르며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 웨슬리는 아주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그 배에는 독일 출신의 경건한 모라비안 형제자매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폭풍우가 몰아쳐 배가 반으로 쪼개질 것 같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기는커녕, 평온한 얼굴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편을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영국인 승객들이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되어 비명을 지르는 동안에도, 모라비안 성도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거룩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던 것입니다.
폭풍우가 거짓말처럼 지나간 뒤, 웨슬리는 그 무리를 찾아가 모라비안 신자 한 사람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당신은 방금 저 거대한 폭풍 속에서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 신자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주셔서, 감사하게도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웨슬리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당신의 아내와 어린 자녀들도 무섭지 않았습니까?"
그 신자가 평안한 음성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의 아내와 자녀들은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 모라비안 형제자매들이야말로 인생의 거센 폭풍우 속에서도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굳건히 집을 지은 사람들의 가장 빛나고 완벽한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5.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삶의 집은 어디에 지어지고 있습니까?
세상의 성공과 칭찬이라는 모래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아니면 낮아짐과 십자가의 실천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까?
인생의 거센 폭풍우는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때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은 화려한 종교적 연륜도, 입술로만 외치는 형식적인 고백도 아닙니다.
오직 매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붙들고 한 걸음씩 순종해 나갔던 거룩한 실천뿐입니다. 반석이신 예수님에 말씀에 순종함으로 누렸던 기쁨이 이 순간 인생의 홍수 가운데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부터 세상의 헛된 가치관을 과감히 내려놓고, 우리의 유일한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기쁨으로 믿음의 집을 단단히 지어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