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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6/26 주일 예배.
하나님 나라.
마가복음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누가복음4:42-44
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잘못 이해하기 쉬운 주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 나라와 천국” 입니다.
오늘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선포하셨던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 나라(Kingdom of God) 과 천국=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은 무엇인가?
성경에는 하나님 나라라는 표현과 천국 또는 하늘 나라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천국을 죽은 후에 가는 곳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나라는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가복음23:43절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 직전에 회심한 강도에게 죽은 후에 낙원에 함께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낙원은 신자들이 죽은 후에 있는 복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천국 또는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를 의미하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 나라와 같은 것입니다.

마태복음에서 천국이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된 것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독자들을 대상으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을 매우 조심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서 “하나님 나라” 라고 표현한 것을 마태복음은 “천국, 하늘나라”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교회에서는 천국을 주로 “죽으면 가는 곳”으로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몇 가지 역사적, 문화적 요인이 작용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한국의 전통적인 내세 개념의 영향입니다.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부터 한국 사회에는 사람이 죽은 후에 좋은 곳에 간다는 의미로 “천당에 간다”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전도 방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이 구호는 복음을 아주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예수 믿는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가고, 예수 안 믿는 사람은 죽어서 지옥간다는 인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메시지가 상대적으로 약해진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한국의 초기 교회가 경험했던 고난의 현실 때문입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고통과 가난과 질병, 사회적 혼란과 일제의 식민 통치라는 매우 어려운 현실을 경험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죽음 이후 하나님과 함께하는 소망은 성도들에게 실제적인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이것 자체는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의미는 약해지고, 천국이 오직 “죽으면 가는 좋은 장소”라는 의미로 축소되어 버린 것입니다.
넷째로 찬송가와 장례예배의 영향입니다.
한국 교회 초기 찬송가에는 천당이라는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장례 예배에서도 천국을 죽음 이후에 가는 곳으로 표현하는 찬송과 설교가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천국=죽으면 가는 곳” 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하게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을 단순히 죽어서 가는 공간적인 장소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2.하나님 나라= 천국은 장소보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하나님이 왕이시며 통치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단순히 하나님이 계시는 특정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통치와 그 통치가 이루어지는 영역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선포하신 첫 번째 메시지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였습니다.

예수님은 ”죽으면 천국이라는 장소에 갈 것이다“ 라고 먼저 선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일이 이제 역사 가운데 실제로 시작되었다는 선언입니다.

이것을 창세기 3장의 타락과 연결해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창조 때 아담과 하와의 왕은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며 왕이셨고,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피조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무엇을 유혹했습니까?
”너희가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이 왕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왕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되려고 했던 인간은 죄와 죽음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타락한 상태로 영원히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때가 차자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다시 회복하기 시작하셨습니다.

3.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은 구약성경에서부터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를 통하여 자신의 왕권을 나타내셨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장차 하나님의 통치가 온 세상에 이루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 속에 들어왔습니다.

마가복음1:15절을 다시 보십시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여기서 ”가까이 왔다“ 는 말은 단순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제로 우리 가운데 임하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실 때 하나님의 통치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병든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다. 귀신이 쫓겨났습니다.  죄인이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이 소망을 얻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예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기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있다는 표적이었습니다.

누가복음 4장에서 가버나움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에서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요청에 따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예수님은 사람들의 인기를 얻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그 나라의 왕으로서 죄와 사탄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것이었습니다.

4.하나님 나라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있습니다.
나라에는 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에는 백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거룩한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자신의 죄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 착하게 살았으니까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착하게 사는 것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선행만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근거로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우리가 착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5.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땅에 이미 임하였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죽음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늘에 오르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왕으로 통치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교회가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온 세상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가 있습니다. 질병도 있습니다. 불의도 있습니다. 고난도 있습니다. 죽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미 왔다면, 왜 아직도 이런 일이 존재합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사탄과 죄와 죽음의 권세를 결정적으로 패배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최종적인 심판과 완전한 제거는 아직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와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죄와 죽음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왕이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모든 피조물이 그리스도의 왕권 아래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하나님 나라는 완전히 완성될 것입니다.
그날에는 질병도 없고, 죽음도 없고, 눈물도 없고, 고통도 없으며, 죄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며 기쁨과 찬양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재림과 휴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생각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 중에 말씀을 드립니다.
종말에 대해 잘못 이해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휴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휴거를 ”예수님이 오시지 전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져 천국으로 올라가고, 이 땅에 남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게 된다“ 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휴거의 유일하고 확정적인 해석은 아닙니다.
데살로니가 전서4:16-17절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휴거의 목적이 성도들이 세상을 영원히 따나 하늘에서 사는 것이라는 데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주님을 맞이하게 됩니다.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 는 표현은 왕이신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나아가는 장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귀한 왕이나 높은 신분의 사람이 어떤 도시에 도착하면, 그 도시의 사람들이 성문 밖으로 나가 그를 맞이하고 함께 도시로 들어오는 관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를 단순히 ”성도들이 지구를 떠나 하늘 나라로 도피하는 사건“으로 이해하는 것은 성경의 전체적인 하나님 나라의 그림과 맞지 않습니다. 휴거의 중심은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그리고 성도의 최종적인 소망은 단순히 영혼이 하늘에 머무는 것이 압니다.
성경이 보여주는 최종적인 소망은 이 세상에서 부활의 몸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때가 바로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6.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왕이신 예수님의 바라보며 따라가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본체이셨지만, 이 땅에 오셔서 섬기는 종으로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붙잡고 더 머물러 달라고 했을 때에도 자신의 인기를 위해 머무르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자들과 가난한 자들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시며 그들을 치료하셨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죄인들을 위해 주셨습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은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의 방식을 말씀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부정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내가 내 인생의 왕이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진다“ 는 것은 날마다 나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온전히 죽이고 하나님의 뜻만이 살아 움직이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고, 용서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름과 이익만을 위해 살아간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따라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왕이신 예수님을 따라 섬김과 사랑과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7.하나님 나라는 교회를 통해 세상에 흘러갑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 그리스도로를 통해서만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교회의 중심을 사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둘째,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한 가족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세째, 공동체 안에는 세상의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서 더 중요한 사람이 아닙니다.
경제적으로 많이 가졌다고 해서 더 귀한 사람이 아닙니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사람도 아닙니다.
모든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하게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교회가 한 가족으로 동일하게 서로를 사랑하며 섬길때 세상은 교회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교회 밖의 약자를 돌보고, 상처받은 사람을 품고, 죄인을 복음으로 회복시키며, 관용을 베풀 때, 세상은 하나님의 통치가 어떤 모습인지를 보게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확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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