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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26 주일설교.
새 창조의 안식을 누리자.
누가복음 6:1–5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삼상21:1-6 아히멜렉 제사장 때)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히브리서4:9-10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가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우리는 매 주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린 후에는 오늘 나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켰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은 토요일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합니다. 반면에 현대의 모든 교회는 일요일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래서 오늘은 첫 창조 때의 안식과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안식과 부활의 새 창조로 완성된 안식을 구속사적 시각에서 안식일에 대한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은 사람에게 안식을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안식은 단순히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그리고 새 창조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그리고 창세기 2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안식은 피곤해서 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을 완성하시고 그 창조의 기쁨을 누리신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식일을 먼저 일을 하고 그 다음에 하던 일을 멈추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안식일을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뻐하는 날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바로 다음 날에 안식하게 하신 것을 통해 알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순간은, 바로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하며 하나님의 창조를 누릴 때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엄격하게 일을 금지하는 것으로 지키려 하였습니다. 
다시한번 말씀 드리자면 안식은 창조의 완성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에 인간이 동참하여 하나님의 창조하신 세상을 누리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날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에 나타난 안식입니다.
2. 인간의 죄로 인해 안식을 상실하였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안식을 상실하였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하나님 대신 자신을 하나님으로 삼고 살겠다는 불순종이었습니다. 아담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순종하는 대신 자기를 믿고 자기의 뜻에 따라 자기를 위해서만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동 자체가 저주가 된 것은 아니지만, 죄 때문에 노동에 수고와 고통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더 깊은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을 주로 모시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 위해 쉼 없는 노력을 반복하게된 것입니다. “내가 더 해야 한다.” “내가 더 성공해야 한다.” 결국 사람은 더 이상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참 안식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몸은 쉬고 있어도 마음은 쉬지 못합니다. 휴가를 가도 염려하고, 잠자리에 들어도 생각이 멈추지 않습니다. 인간의 가장 깊은 문제는 육체의 피곤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영혼의 불안이기 때문입니다. 
어거스틴의 고백록에 “주님께서 우리를 주님을 위하여 지으셨기에, 우리의 마음은 주님 안에서 안식하기까지 쉼이 없습니다.” 말은 참으로 진실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이 사는 사람에게 안식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사람만이 안식이 가능합니다.
3.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주신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스라엘에게 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 하신 것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애굽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단순히 일을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심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경배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게 주어진 안식일도 그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들어간 약속의 땅 가나안도 궁극적인 안식할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4장 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히브리서 4장 10절은 말합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구약의 안식일은 더 나은 안식을 기다리게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는 안식입니다.
4. 예수님은 안식일에 주인이십니다.
이제 누가복음 6장을 보십시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먹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을 문제 삼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남의 밭의 밀을 훔쳐 먹은 것때문이 아니라, 제자들이 안식일에 일을 하여 규례를 어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명기23:24-25절에서 남의 밭에 들어가 그곳의 곡물을 배부르게 먹어도 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안식에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무엘상 21장에 나오는 다윗과 함께한 사람들이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을 먹은 것으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안식일 규칙을 내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안식일을 만드시고 안식일의 목적과 의미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안식일이 예수님 자신에 것이고, 궁극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지키던 안식일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히브리서 4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에게 더 나은 안식을 주시는 안식일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예수님 당시의 최고의 종교인들인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주인으로 더 나은 안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켜온 전통을 깨뜨리는 자로만 보았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에 주인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모를 수가 있습니다. 두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첫째는 주일 성수가 안식일을 지킨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제가 12년간 다녔던 교회는 주일 성수는 어디를 가든지 주일에는 반드시 본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 직장이 다른 도시에 되었어도 주일 성수를 위해 교회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그런 규칙의 결국 그 성도가 연락을 끊고 교회를 떠나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을 그 교회의 규칙으로 대체한 예 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어느 교회에서나 예배를 드리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두번째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신학자이신 고 박윤선 박사님 이야기입니다. 미국에서 한 선교사가 배를 타고 한국에 주일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사님은 마중나갔습니다. 그리고 고신 교단은 안식일에 일을 한 것이라 문제 삼았습니다. 당시 그 교단은 주일은 안식일이니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고수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식료품을 사는 것도 금지 하였습니다. 교단과 박윤선 박사님은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을 문제로 갈등이 있었고, 결국은 신학교 교수직을 사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금하는 것으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안식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쉬는 기쁨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참 안식을 위해 주일에 교회에서 너무 많이 일을 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직장에서 5-6일을 일하고 교회와서 더 일을 하면 언제 여러분은 언제 안식을 누리겠습니까? 공부하는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6일을 열심히 공부하시고 교회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성도간의 교제하며 기쁨을 누리시는 안식을 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라 하는데 그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 행사를 줄이고, 봉사를 나누어 섬기면 됩니다. 실제로 일주일간 직장을 다니지 않는 목사가 제일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안식일에 모든 사람은 일을 하지 않지만, 성전의 제사장은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5. 토요일이었던 안식일을 교회가 주일(안식 후 첫날)로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일(안식 후 첫날)은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은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라고 기록하며, 요한계시록은 이 날을 “주의 날”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주일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안식일을 단순히 다른 요일로 옮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구속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새 창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거룩한 표지입니다.
안식일의 역사적인 흐름을 살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의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구속의 안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셨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창조주를 기억하며 구원받은 백성이라는 징표로 안식일을 반드시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언약적 의무와 규례는 출애굽한 이스라엘과 그 후대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창세기의 안식과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안식일에 대한 의무과 규례 사이의 수천년의 시간은 그런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안식을 지켰다는 성경적인 내용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담 이후의 후손들이 그리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안식일을 지켰는지는 아니면 안지켰는지 모릅니다. 단지 창조 때에 주어진 안식에 대한 약속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창조의 안식이 예수님이 오심으로 온전한 안식이 다시 시작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새 창조의 안식입니다. 안식일에 주인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로 죄를 깨끗하게 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새 창조를 완성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구원의 새 창조를 기억하며, 예수님이 부활하신 일요일에 모여 예배하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6.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의 안식은 첫 창조에서 시작되어 죄로 상실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새 창조의 안식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시작된 안식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안식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고 새 창조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안식을 누립니다.
아직: 그렇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죄와 죽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않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온전하게 완성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여전히 “안식할 때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주일은 현재의 안식을 누리면서 동시에 장차 영광 가운데 주어질 완전한 안식을 소망하는 날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일에 모여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되 새 창조의 안식을 미리 맛보고, 부님 다시 오실 그날에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며 기쁨으로 예배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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