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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1.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7:12, 갈라디아서 5:14
제목: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느니라.

마태복음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흔히 황금률이라 불리며 독립적인 격언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마태복음 7장의 문맥의 흐름 안에서 이 구절을 보면, 이 구절은 독립적으로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이 문맥적인 흐름에 맞추어 오늘의 말씀을 설교하겠습니다.

1. 7:1-5절의 “비판하지 마라”는 금지 명령과 7:12절의 “대접하라”는 말씀과의 연결입니다.

1.1) 비판하지 말라는 말과 대접하라는 말은 둘다 타인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비판하지 말라는 권고는 수동적인 행동으로 타인을 대하는 방식일 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대접하라는 권고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타인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비판받는 것 보다, 존중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내가 존중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을 거울삼아 먼저 상대방에게 사랑과 존중을 실천하는 능동적인 삶으로 나아가라는 가르침입니다.
비록 형제가 실수하고 있더라도 그 형제에게 비판을 하기보다 더 적극적으로 가까이 가서 사랑과 존중을 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1.2) 제자들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표면적으로 이 교훈은 모든 행동을 자신을 기준으로 시작하라는 것 같습니다. “네 이웃을 내 몸 같이 사랑하라”도 마찬가지로 자신의 기준을 강조하는 말씀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면 왜 자신에게 먼저 좋은 것인지 살핀 후에 대접하라 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죄로 오염된 자아를 가진 우리의 본성은 언제나 자기를 제일 먼저 생각을 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생각을 하고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타인에 대하여는 좋은 것은 잘 파악을 하지 못하지만, 타인의 실수는 잘 보고 비판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반면에 타인의 필요를 깊게 생각하거나 존중하는 일에는 무능력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에 대해서는 비판 대신 존중을 받고 싶어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에게 향하는 존중받고 싶은 마음의 태도로 타인을 대접하라는 것입니다.

1997년 US 뉴스 앤 월드 리포트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인간의 자기 중심적 편향을 보여 주었던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설문은 "다음 인물 중 누가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은가?"라는 질문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놀랍게도 응답자들은 성인으로 추앙받는 인물보다 자기 자신을 더 천국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습니다.
6위는 빌 클린턴(52%) 5위는 다이애나 비(60%) 4위는 콜린 파월(61%) 3위 마이클 조던(65%) 2위 마더 테레사(79%).
대망의 1위는 응답자 본인으로 87%입니다.
만일에 위에서와 같이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를 하듯이 타인을 대하게 된다면, 지금의 사회는 훨씬 더 좋은 상태로 변할 것입니다. 

1.3) 반면에 자기중심적, 편향적인 죄성 때문에 다른 이에게 행한 불쾌감을 주는 대접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남을 돕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돕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대접이 도리어 두 사람 간의 관계성이 나빠지게 하는 대접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받는 사람에게 합당하지 않는 방식이 아닌 내 편의 위주의 대접을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원인을 7:1-5절을 통해서 답을 한다면, 자신이 대접받고자 하는 방식이 아닌 자기 편한 방식으로 하는 대접은 우리 눈에 들보(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전도사 시절에 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정말로 좋은 음식만을 구입하여 드셨습니다. 모시떡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분이 만든 것을 구입하고, 차도 어린 보리순으로 만든 차만을 드셨습니다. 그 외에도 유명하고 비싼 음식을 한국에서 사오셔서 드셨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 매디슨으로 돌아오시는 날이면 저에게 매번 픽업을 부탁하셨습니다. 제가 집에 데려다 주면, 그분은 모시떡과 유명한 사람들이 만든 음식들을 주었습니다. 문제는 오늘 새로 가져온 음식을 집어 넣을 냉장고 공간을 만들기 위해 작년에 가져온 음식을 저에게 준 것입니다. 그분은 언제나 그 음식이 얼마나 좋고 비싼 것이라 말씀하시면서 주셨습니다. 만약 그 음식을 저 혼자서 먹는 것이었다면 1년간 냉동으로 보관된 음식에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저는 감사한 마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음식을 아이들에게는 먹일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에게 대접하고자 한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편리를 위해 음식을 준 것이기에, 받는 저의 상황을 고려한 대접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냉동고에 오랫동안 보관돼서 상했을 수도 있는 음식을 자신의 어린 자녀에게 주어야 할지 말지 먼저 생각해 보았다면, 그분은 그것을 저에게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1.4) 다른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에는 다양한 방식이 있습니다. 또한 상황이 비슷할지라도 다른 방식으로 대접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대접은 식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작은 선물과 격려의 편지가 될 수도 있고, 친절하게 웃어 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사소하지만 창피한 실수를 덮어 주는 것도 대접해 주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침묵하며 들어 주는 것은 아주 좋은 대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 무슨 행동을 하기보다 손을 잡고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하겠다는 말이 가장 위로가 되는 대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만족스러운 대접은 그 사람이 만족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최소한의 기준이 내게도 만족스러울 수 있는 대접에서 시작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거창한 것으로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능력을 벗어나는 대접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람들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가지고 하는 것입니다.

2. 7:7-11절의 기도와 연결하면: 하나님께 구하는 자가 하나님께 좋은 것을 받았으니, ”너희도 대접하라“는 의미로 이해를 할 수가 있습니다,

2.1) 7:7-11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구하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7:12절의 시작의 '그러므로'는 바로 구하는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의 풍성한 응답에 근거를 삼고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구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멈추지 않고 구하는 자입니다. 찾는 자는 언제나 자신이 찾는 것을 하나님 아버지가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문을 두드리는 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두드리는 자에게 열어 주실 것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다양하게 기도하는 자녀들은 아버지에게서 구하는 것을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기도로 하나님 아버지께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받은 자만이 이웃에게 대접할 마음의 여유와 실제적인 능력이 생깁니다.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자신들이 하나님에게서 받는 경험에서 나오는 만족을 경험하는 것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이 타인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 대접은 자신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것으로 다른 이에게  하는 것입니다. 

2.2) 그러나 남에게 대접하는 사람이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내가 대접한 사람으로부터 대접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의 태도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성경은 내가 대접한 사람이 나에게 그대로 대접을 해 줄 것이라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즉, 보상을 바라는 대접을 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기에 대접을 한 후에 대접한 사람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보상 받기를 원하였다면, 오늘의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보상은 하나님께서 대접을 한 사람에게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잠언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우리가 하는 대접은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에 기반을 두었기에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우리가 행하는 대접에 대한 대가도 우리가 대접한 사람에게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해 주신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리를 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값없이 풍성하게 좋은 것을 주시고,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다른 사람에게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여기에 멈추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을 대접하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더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시겠다 하신 것입니다. 
만일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께 은혜를 갑절로 받기를 원하시면, 더욱 더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으로 대접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의 논리하고 합니다. 
그러므로, 비록 나의 도움을 받은 사람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그리고 당연한 듯이 행동하더라도 실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행한 선한 대접은 하나님이 받으시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멈추지 않고 지속해서 받은 은혜들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기쁨으로 충만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는 대접에 포함되어 있는 기본 원리입니다.

3.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이 가지고 있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시작 부분인 5:17에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7:12절에서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고 말씀을 하시며 설교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인 5장에서 7장까지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로 시작과 끝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5장에서 7장에 있는 제자들의 삶에 높은 수준의 원리들(원수 사랑, 비판 금지 등)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결국 ‘사랑으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체로 축약한 말이 율법과 선지자입니다. 율법과 선지자를 완전하게 하는 실천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행하는 제자들은 예수님이 율법을 완전하게 하시는 사역에 동참하는 참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사랑으로 대접하는 자로 살아감으로써 예수님이 율법을 온전하게 하신 사역에 동참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느니라.

4. 마무리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말씀에 대한 실제적인 실천은 다음과 같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풍성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주머니를 채운 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남을 대접하는 손길로, 즉,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신 예수님의 사역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자녀가 인색한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없다”라고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명령이나 남을 대접하라는 권고는 같은 실천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반드시 이 명령을 실천하여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임을 드러내어야 합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에 대한 지침이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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