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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18.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7:13-14, 누가복음 13:22-27
제목: 좁은 문으로 들어가 걸으라

마태복음 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고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누가복음 13:22-27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5장의 팔복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가져야 할 성품과 윤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이 가르침들은 지난주 설교했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에서 일단락됩니다. 이제 마태복음 7:13부터는 그 가르침을 들은 자들이 어떤 삶을 선택하여 살 것인가를 묻는 결론부에 들어가게 됩니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은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1.1)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두 가지 삶과 그 결과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 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통해 멸망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하루라도 빨리 결정하도록 도움이 되는 사실이 있습니다. 
오직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만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끝나 죽은 후에는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또한 만일 우리 주님이 우리가 죽기 전에 이 땅에 돌아오시면 역시 기회가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 시간이 우리에게 중요한 선택의 순간이 됩니다.
“순간의 선택이 십년을 좌우합니다”라는 공익 광고 문구가 있습니다. 이 광고 문구는 안전벨트 착용, 음주 운전 예방, 금연, 보험 가입 등을 권고하는데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인상을 남기며 사람들이 결단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광고 문구를 차용하여 사용한다면,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것을 선택하여 사시겠습니까?

1.2) 넓은 문을 선택하여 넓은 길을 따라갔던 자들의 삶의 결말입니다.

누가복음 13:25-27절에서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산상설교에서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들은 우리가 스스로 실천을 하기가 어렵고 힘든 것들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나 비판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접하는 것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기도하면) 주실 것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을 걸어가기 위해 기도로 하나님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반면에 넓은 문을 선택하여 들어가서 넓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간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넓은 길은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 걸어가는 넓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넓은 길은 인기가 많아 사람들과 같이 걸어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넓은 길을 걷어갔던 자들의 결말은 주님께 모르는 사람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넓은 길을 걸어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지 않은 행악자들은 결국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서 추방을 당할 것입니다. 즉, 멸망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문은 삶의 방향성과 가치관에 대한 비유입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와 의에 최우선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반대로 넓은 문은 가치관이나 태도에서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는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걸어가고 있는 자들은 자기자신을 왕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왕이신 예수님과 관계가 없는 자란 말이 됩니다.

2.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들어가 걸어야 하는 좁고 협착한 길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1) 세상의 인기와 유행을 쫓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20년전 미국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식당에서 같이 일하던 웨이트리스 분이 이사를 하시면서 사용하지 않는 여자 구찌 손지갑을 주었습니다. 그 손지갑은 무려 구찌이지만 당시에 개인 수표를 넣을 수 있는 크기가 아니어서 사용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도 그 지갑을 사용하라고 준 것은 아니고, 그냥 명품이라고 불리는 것이니 한번 가져보라고 준 것입니다. 사실 저도 사용할 수 없어서 5살인 딸에게 그 지갑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딸은 그 가방에 스티커와 가짜 돈을 넣는 용도로 사용하였습니다. 몇 년이 지나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생일 선물로 그 지갑을 잘 닦아 보냈습니다. 제 딸은 그 지갑이 없어진 것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그 지갑을 받은 분은 너무 만족해 하셨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 지갑을 가지고 모임에 가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았어"라고 했습니다.

그 지갑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이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제 딸이 사용하였던 방식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세상에 명품이라는 가치에 기쁨과 만족을 찾는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됩니다.  그와 같은 것으로 만족감을 받는 것은 지금 넓은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로 걷고자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이 기뻐하며 만족하는 방식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됩니다.

2.2) 좁은 문으로 들어가 협착한 길로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은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옛 자아는 한 마디로 죄로 오염된 오직 내가 중심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마16:24). 자신이 중심이 되고 내가 칭찬을 받고자 하는 모든 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좁고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은 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자기 중심적인 옛 자아를 매일같이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2.3) 좁은 길을 지속적으로 걸어가고자 한다면,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이 지금 좁은 길 위를 걷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고자 하는 자는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언제나 묵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방식에는 영생에 이르는 진리가 없는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좁은 길에서 벗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백성들은 자신이 가는 길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좁은 길인지를 언제나 진리의 말씀으로 점검해야 합니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에 빨리 도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좁은 길을 걸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합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은 순간 순간을 잘 선택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빨리 이루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은 좁은 길을 따라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만일 교회가 목표를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여길 때, 그 교회는 넓은 길을 걸어가게 될 가망성이 아주 높아지게 됩니다. 성도를 몇 명까지 교회에 데려오는 전도 목표를 정하고, 교회 예산에  금액을 정하고, 올해는 어떤 건물을 세우겠다는 목표는 마치 세상의 기업들의 전략과 같아 보입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에 다녔던 교회는 보고서가 정말로 많았습니다. 
교회가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1년에 한 번 통독하는 것과 성도 한 명당 10명을 전도하기로 목표를 정합니다. 매년 첫째 주에 교회는 각 구역별로 그리고 청년부와 중고등부까지 소속 성도들의 이름이 있는 종이를 각 기관의 장들에게 줍니다. 그 종이에는 모든 항목이 있습니다. 각 사람이 일주일마다 성경을 몇. 장 어디서 어디까지 읽은 것을 기록하게 합니다. 헌금은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을 체크합니다. 전도는 누구를 했고 어디에 사는 사람인지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 기관장 회의에서 모든 성도들의 일주일 신앙 일지를 점검합니다. 그리고 이것에 성실하지 못한 기관장은 목사님께 심한 꾸중을 듣습니다. 복음을 전함과 성도의 신앙을 위한 것이라는 명목으로 교회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성도들을 밀어 붙입니다. 이것은 정말로 기쁨이 없는 행위였습니다. 물론 말씀에 기쁨을 경험한 성도는 교회가 권하는 성경 읽기보다 훨씬 많이 읽었으며, 기쁨으로 전도를 했습니다.
조금은 느릴지라도 성도가 자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전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좁은 길을 걸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자신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자라 여기지만, 넓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3.1)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걸어간 자들입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경건한 생활에 열심이 있지만,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확신을 했던 자들입니다. 불행히도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좁은 길이 아닌 넓은 길을 걸어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외식적으로 보여지는 경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으로 착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걸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서  독사의 자식들이라 강한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강한 책망을 받은 이유는 규칙들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신앙 생활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자 하였기 떼문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넓은 길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된 것처럼 큰 소리로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구제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고자 드러나 보이게 하였습니다. 아마도 그들의 구제는 금액이나 횟수에서나 다른 어떤 사람보다 많고 자주 하였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외식적인 신앙은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로 걸어가는 대표적인 예가 될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이 있는 성도들이 조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같은 외식적인 경건 생활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외식적인 행동을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은 것'이라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불신자들이 걸어가는 일반적인 넓은 길과는 다르게 아주 경건한 가면을 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멸망으로 가는 넓은 길로 걷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2) 예수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길거리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것으로 좁은 길로 걸어가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들을 모른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신 것과 길거리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반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구경하며 들은 것만으로 자신들이 좁은 길을 걸었다고 착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듣기만 하였을 뿐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26-27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이렇게 신앙의 구경꾼들에게 예수님은 나와 너희는 서로 관계가 없으며, 행악하는 자들이라 책망하시며 쫓아 내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적대하며 자기들의 외식적인 신앙에 철저하였던 것과는 반대로 신앙의 구경꾼들은 예수님에게 호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에서 구경하고, 주님 앞에서 식사를 한 것만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도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처럼 넓은 길을 따라 걸었던 행악하는 자들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단지 주님이 가르치시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는 '좁은 길을 걸어가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 말할 수는 없음이 분명합니다.

3.3)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말씀은 잘못된 해석을 할 여지가 있는 말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라는 말씀을 '노력으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는 근거로 생각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나의 노력이 구원을 얻는 조건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라는 이 말씀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치열한 삶을 표현한 것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에게 선포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여 구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을 포기하고 유일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믿는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좁은 문과 같아서 자기중심적인 의를 내려 놓고 예수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않는 사람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걸어 갈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것은 나의 공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유일한 문을 붙잡는 믿음의 태도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 생명을 받아 누리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구세주이심을 확신하는 고백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4. 오늘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신이 구원을 받았음을 드러내는 증거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로 걸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좁은 길을 걸어가는 고행이 결코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고 협착한 길은 걸어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베풀어 놓으신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임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나의 걸어가는 길이 하나님이 걸어가라 하신 좁은 길인지를 날마다 점검해야 합니다.  
주무시기 전에 오늘 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좁은 십자가의 길을 걸었는지 점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종국에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자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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