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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8.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7:6 
제목: 영적 분별력

마태복음 7: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대학교 시절 저희 집까지 버스로 1시간 거리를 통학했습니다. 저녁 귀가 시간엔 버스 뒷자리에 앉아 옆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곤 했습니다. 
그 버스에는 제가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분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귀가하는 버스에서 종종 마주치는 중학교 선배도 있어서, 하루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 선배는 아무말 없이 잘 듣기에 저는 전도가 잘되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동생을 통해 전해 들은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선배가 저 때문에 너무나 불편했다며 동생에게 크게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구원의 소식은 모든 사람에게 복된 소리로 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에게 복음은 삶을 깨우는 생명의 소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기를 괴롭히는 소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사명이 있지만, 동시에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복음의 거룩한 가치를 지켜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누구에게 이 거룩한 것을 주지 말아야 할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1. 성도는 비판을 넘어서는 영적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1.1) 마태복음 7:1-5절의 지난주 설교, "비판하지 말라"에 대한 정리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실수)를 빼기 전에 내 눈 속의 들보(죄)를 먼저 빼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끌(실수)를 빼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내 눈 속의 들보(죄)를 가진 채로 다른 형제에 실수를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비판입니다. 그러한 비판자들을 예수님은 외식하는 자라 책망하셨습니다.
우리는 외식하는 비판자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속에 있는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후에 사랑으로 형제의 눈 속의 티끌을 빼주어야 합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인 교회가 더욱 건강하고 은혜가 넘치는 곳이 될 것입니다.

1.2) 형제를 사랑으로 돌보고자 하는 열성적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영적 분별력입니다.

마태복음 18:14-17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교회 공동체에 있는 형제자매들은 어떤 형제가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분명하게 권고를 하고 책망을 하여 그 죄에서 돌이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7:1-5절 말씀대로 '비판을 하지 않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분별없이 실천하게 되면, 7:6절의 말씀처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진주를 돼지에게 던지는 것이 됩니다. 
또한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은 죄지은 형제에게 비판(징계)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분별력을 가지고 형제의 죄를 알게 된 성도가 조용히 말하여 깨닫게 합니다. 만일 그가 죄에서 돌이키지 않고 그 잘못된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 다음으로 두세 증인으로 권고를 합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변화가 없다면, 최종적으로 교회가 그 문제를 다루고 징계를 하여 같은 성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징계는 교회가 죄지은 자에게 하는 올바른 방식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까지 했음에도 그 형제가 죄된 삶을 지속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그럴 경우 7:6절의 상황과 같은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지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교회는 그 권고를 멈추고 교회로부터 추방과 같은 강력한 징계를 해야 합니다. 
교회가 이렇게 오랫동안 헛된 노력을 하는 이유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못 적용했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돌이킬 마음이 없는 자에게 무작정 시간을 들여 거룩한 말씀으로 권고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사랑의 행위가 아니라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는 헛된 행위입니다. 이것이 7:1-5절의 비판의 말씀 뒤에 7:6절에서 영적 분별력을 말씀을 가르치신 이유입니다.

2. 마태복음 7:6절을 설명하겠습니다. 
전 단락에서는 교회 내에서의 비판을 위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경우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지금부터는 교회 외부의 복음 전파에 필요한 영적 분별력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2.1) 거룩한 것과 진주입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복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나타내는 비유입니다. 거룩한 것과 진주는 그리스도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좋은 소식입니다. 특히, 거룩한 것은 제사드리는 제물에 쓰는 용어입니다. 제사로 드린 화목제물은 제사장과 예배자가 나누어 먹습니다. 이스라엘의 백성 중에 어느 누구도 화목제물로 드린 제물을 개에게 던져 주지 않았습니다. 만일 먹지 않고 거룩한 것을 개에게 던졌다면, 그 제사는 무효가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진주는 당시에 매우 귀한 보석이었습니다. 진주는 둥그렇게 생겨 눈을 감고 잡으면 매끄러운 조약돌로 느껴질 수 있어 돼지에게 던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손에 있는 것이 진귀한 진주인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돼지에게 던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돼지에게 진주는 조그만한 밥 한 덩어리보다 못한 것입니다. 돼지는 자기에게 돌을 던지는 것으로 여기고 화를 내며 그것을 발로 밟고 공격해 올 것입니다.

2.2) 개와 돼지입니다.
개와 돼지는 우리가 아는 동물이지만, 유대인들은 부정한 짐승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대개는 이방인들을 비하하는 경우에 사용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방인들은 하나님 말씀의 가치를 알지도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 말씀과 복음을 조롱하였습니다. 
현시대에 이 비유는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고 영적으로 무지하면서 복음을 도리어 공격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유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처럼 지금도 영적인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적인 것을 최우선으로 두기 때문에 지금의 순간에 유익이 되지 않는 영적인 것을 비웃고 비방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인 복음을 전하여 준 사람에게 화를 내게 됩니다. 

2.3)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입니다.
복음을 전할 때나 거룩한 사역을 행할 때, 노골적으로 적대적인 사람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억지로 복음을 전할 경우, 그들은 더욱더 복음과 복음 전파자를 조롱하거나 공격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을 전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를 잘 판단하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다음은 분별력이 없이 복음을 전함으로 인해 생긴 어려움입니다.
한 선교단체가 태국 불교 사원에 가서 찬송을 부르며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행동은 우리 하나님을 욕되게 할 뿐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 자신을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합니다. 그들의 분별없는 행동으로 태국에 있었던 기존 선교사들이 이상한 종교인으로 오해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제 친구는 약사인데 복음에 열심히 많은 사람입니다. 그는 약사로서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상담하고 대화도 하는 사람입니다. 그의 손님 중에 히잡을 쓰고 오는 분도 있었습니다. 친구는 그녀와 서로 대화도 자주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그녀와 친해졌다고 여기고 어느날 약을 건네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 다는 전도를 했습니다. 그후 친구는 그 무슬림 여인에게서 고소를 당했습니다. 친구는 속해 있던 약국 체인 회사로부터 즉시 해고를 당했고 오랫동안 그 문제로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의 복음에 대한 열심과 용기가 정말 부러웠지만,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친구는 영적 분별력으로 상대를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친구를 찢어 상하게 하려는 자에게 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거룩한 것과 진주를 주지 말아야 하는가?

3.1)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자기의 의와 교만으로 가득찬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이들에게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는 자들이 아니라, 듣고 틈을 잡아 비방하는 사람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개와 돼지처럼 거룩한 것과 진주를 받아서 짓밟고 전한 자들을 찢는 자들이었습니다. 심지어 교회 내에도 우리가 받은 은혜의 기쁨을 나누면 그것으로 빌미를 삼아 비방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귀한 은혜를 나누는 것을 아껴야 합니다.

3.2) 헤롯왕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헤롯이 바라는 질문에 응대해주지 않으셨습니다. 헤롯은 진리의 말씀보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기적과 이적을 구경하고자 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자 업신여기며 조롱을 하였습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은사 집회나 신비한 체험만을 쫒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목사들의 손짓에 넘어지며 은 이빨이 금 이빨이 되는 것을 보고자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말씀이 전해지는 시간을 지루해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 친척분의 교회 목사님은 말씀을 정말로 성경적으로 그리고 은혜롭게 잘 전하시는 분입니다. 하지만 제 친척은 자주 기도원에 갑니다. 무슨 특별한 기도를 드리러 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원에서 은사 집회가 있을 때마다 교회를 빠지고 그 은사 집회에 가는 것입니다. 그는 교회에서 나오는 말씀 대신 무엇인가 흥미롭고 굉장한 기적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마치 헤롯이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던 이유와 같습니다. 이렇게 헤롯과 같은 호기심만 가득한 이들에게 거룩한 말씀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3.3) 복음을 거부하고 반박하는 유대인 같은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 바울은 안디옥에서 자신의 전도를 시기하여 반박하고 비방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만약 바울이 그런 상황임에도 복음을 계속 전했다면, 바울과 복음에 대한 적대성이 더욱 심해졌을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공격하는 자들에게 억지로 전하는 것은 적대감만 키우는 행동입니다.

4.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성도들에게 필수적인 영적 분별력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첫째는, 교회 내적 차원에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죄 지은 형제를 돌이키도록 지속적으로 사랑으로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강력한 징계를 하여 성도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지를 잘 판단하게 해주는 데에 필요한 것입니다. 특히나 죄에서 돌아서려고 하지 않는 자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필요합니다. 

두번째는, 교회 외부 차원에서 우리가 거룩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는 데에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거룩한 것을 전하기 전, 상대방을 개나 돼지로 미리 단정짓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분별력 없이 행하여 스스로가 공격받거나 복음이 짓밟히게 해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평소 복음을 열심히 전하는 자로 살되, 성령님께 영적 분별력을 구해야 합니다. 상대의 마음 밭이 준비되었는지, 지금이 진주를 전할 때인지 아니면 침묵할 때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은 더욱 효과적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복음은 그 가치를 온전히 지키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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