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1.23.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6:25-30
제목: 염려하는 자가 되지 말자

마태복음 6:25-30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1. 1998년경 IMF가 한참 영향을 미치던 시기에 첫애가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갑자기 직장에서 권고 사직을 당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돈이 많이 필요했는데 저축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당시 살았던 수원은 제 고향도 제가 나온 대학교가 있던 곳도 아니어서 도움을 요청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걱정과 염려가 커져 갔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와 말씀을 읽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력서를 꾸준히 제출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는 정말로 온 세상의 주인되신 하나님의 자녀인가?" 하는 의문과 염려가 더 커졌습니다. 그럼에도 꾸준히 말씀을 읽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어 마음에 평안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언뜻언뜻 불안과 염려가 있었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났을 즈음 이름도 잊고 있었던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이전의 학원에서 한 달 정도 근무하다가 다른 곳으로 떠났던 사람이었습니다. 단지 저는 그분과의 관계는 그분이 학원을 그만두고 나갈 때 제가 마지막 인사를 하며 그 사람의 말을 잠시 들어준 것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도움으로 이전 학원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다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보내신 분이 하나님이라 생각하고 감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사랑하는 자녀로 돌보시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그후로부터는 물질적인 것에 염려가 생길 때마다 저 자신에게 “증복아, 너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다. 너는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라고 명령하고 권면해오고 있습니다.

2. 오늘의 말씀을 통해 제자들에게 있던 문제가 무엇이기에 "염려를 하지 말라" 하신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1) 제자들은 자기 모든 삶에 필요한 것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기에 염려하게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떠돌아다니면서 하루하루 식량을 구해야 했습니다. 그러니 사실상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는 염려는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 성도들은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느날 짐을 싸서 떠나야 할지 몰랐습니다. 집을 떠나 떠돌던 성도들에게 가장 현실적인 문제는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니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은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의 염려는 단순히 떡이나 마실 물이 없어서 온 것만은 아닙니다. 진짜 이유는 살아가는 모든 것을 자신이 책임을 져야만 한다고 오해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활에 책임져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모든 것을 감당하는 자가 되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겠다 약속해 주셨습니다. 
물론 부모나 형제가 없는 분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모든 삶의 필요한 것을 책임져야 합니다. 힘들 때 손을 벌려 "도와주세요" 할 대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모가 있는 분들은 부모나 형제에게 필요한 것을 도와줄 것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는 속담은 정말로 적절한 표현입니다. 아무리 힘이 센 소도 자신이 기댈 언덕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인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는 모든 좋은 것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생명을 주시고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께 먹고 마시고 입는 것과 같은 필요한 것을 언제든지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러한 사실을 망각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마치 아버지가 없는 자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입는 모든 것을 스스로 책임을 지고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그것을 채우려고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2.2)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자신에게 더 의지하는 성도들은 더 염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자기의 노력으로 얻고자 하는 자들은 사탄의 공격으로 더 쉽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21세기 미국에 살고 있는 성도들은 더 이상 먹고 마시고 입는 문제에 대한 염려는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더 좋은 옷, 더 좋은 차와 집을 원하는 욕심 때문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갈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그런 욕심을 가진 사람은 사탄의 좋은 먹이감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삶은 염려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염려하다"는 헬라어로 ’마음이 분산되다, 나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두 눈을 가지다, 두 마음을 가지고 있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한 눈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다른 눈은 이 세상의 물질을 보는 두 마음을 가진 자라는 의미입니다. 두 곳을 다 보는 자, 두 곳에 다 마음을 두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이 세상의 것에 집중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바로 두 마음을 가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마음을 가졌다"는 것의 의미가 마음이 분산되어 있는 염려하는 자라는 말과 같은 의미입니다. 
만일 지금 염려로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진 것 같은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보면서도 동시에 세상 것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오직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함으로써 염려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베드로전서 5:7-8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염려로 시간을 보내는 하나님의 자녀를 삼키려고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돌아다니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3) 신자는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시는지를 모르기에 염려를 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인 새가 먹을 곡식을 심지도 않고 모으지 않을지라도 오늘도 그 작은 참새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계십니다. 그 작은 참새보다 하나님의 자녀를 훨씬 더 귀하게 여기시지 않겠습니까?

염려하는 자는 자신이 하나님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르는 자들의 생각 흐름은 이와 같습니다.
돈이 필요한 상황이 오면, 일단 염려합니다. 물론 누구나 힘든 상황에 대한 불안함으로 염려를 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하는 대신 즉시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입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작은 참새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 귀중한 존재인지를 떠올리지 못합니다. 공중의 작은 새조차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는 것을 전혀 기억해 내지 못합니다. 그 결과로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제일 먼저 해야하는 일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직업을 먼저 찾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먼저 깊이 생각하여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라는 분명한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작은 참새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존재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 믿음으로 아버지께 나아가 도와 주실 것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실 것입니다.

다음은 확신에 도움이 되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빌립보서 4:6-7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4) 자신에게 불가능한 것을 욕심을 내는 자는 염려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우리가 하는 염려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어쩔수 없는 불가능한 것일 수 있습니다. 27절 말씀처럼 우리가 염려하는 것으로 우리 키를 한 자(약 30cm)나 더 키울수 없는 것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여러 문제들을 분명하게 구별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쓸데없이 염려하지는 않고 있지는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불필요하고 불가능한 것을 하고자 하면 그는 염려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그결과 신앙의 기쁨을 잃을 것이며 믿음이 작은 자로 드러날 것입니다.

2.5) 하나님이 얼마나 자신을 돌보시고 계시는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하나님 자신의 자녀들'이 '자신들이 입는 의복'에 대해 염려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확신시키기 위해 들의 백합화와 솔로몬의 모든 옷과 가치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백합화는 최고의 부자 왕이었던 솔로몬의 모든 인간적인 솜씨로 만든 옷보다 더 좋은 영광으로 하나님이 입히신 것이라 합니다. 심지어 그 들에서 흔히 보게 되는 풀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것임에도 하나님이 입히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의 피조물들보다 더 입히시는 분임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염려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은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 하십니다. 
여기서 믿음이 작은 자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을 닮아 성숙해 가는 것이 없는 자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려 하기 때문에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자신의 노력으로 먹고 마시고 입으려 합니다. 그들은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을 찾기보다 먼저 염려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에 신뢰를 두는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직분은 장로와 집사이지만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들과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교회를 다니며 말씀을 듣고 배웠지만 처음 믿었을 때나 지금이나 믿음이 조금도 성숙해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을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 부릅니다. 그들의 특징은 염려가 많습니다.

3. 예수님은 마지막에 염려하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작은 자라 부르시지만 그것은 책망이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의 외침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께서도 세상을 사랑하사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리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복된 소식을 위해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하나님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물위를 걸어 가시기도 하시고, 폭풍을 말씀으로 잠재우셨고, 배고픈 사람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어 배불리 먹이셨습니다. 병자들을 고치셨고, 귀신을 쫓아 내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더 알도록 하기 위함이며, 구원의 목적을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한 염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염려로 믿음이 작은 자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담대한 믿음으로 구속역사의 전사들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염려하는 자로 믿음이 작은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 되신 은혜를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귀하게 여기고 계시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하는 일이 없이 믿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매순간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