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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7.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7:1-5
제목: 외식하는 비판에 대하여

마태복음 7:1-5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청년 수련회에서 재미난 게임을 많이 합니다. 가끔 방송에서도 하는 게임입니다. 맨 앞줄의 사람에게만 쪽지를 보여주고 뒷사람에게 소리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그 문장을 전달하게 합니다. 그것을 받은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더하여 다시 뒤에 있는 사람에게 전달합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 맨 뒤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전달이 되면, 맨 뒷사람은 자기가 들은 것이라 생각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게임에 참석한 어느 팀도 정확하게 그 문장이나 단어를 전달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 엉뚱한 말을 우리는 듣고 보면서 즐거워합니다. 하지만 교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이나 비판은 절대로 게임처럼 즐거운 웃음을 만들어 내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소문이나 비판은 실제로 자기 생각을 더하여 전달하므로 사실을 과장되게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말씀의 시작은 명령형 ”비판을 하지 말라“로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사람에 대해 전혀 비판을 하지 않으리라 작정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절대로 제자들은 무조건적으로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비판하지 말라 하신 것은 자신의 죄가 더 크고 무거움에도 다른 형제의 죄를 보고 비판하며 고쳐 주겠다고 하는 외식 때문이었습니다.

1.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진실함으로 하는 비판과 책망은 필요합니다.

1.1) 교회에 악이 조성되어 하나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지 못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는 단호하게 비판과 책망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에 보면 음행을 저지른 형제가 교회에서 그 음행을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을 합니다. 심지어 그 음행은 교회 밖의 이방인들조차 하지 않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그 문제를 일으킨 사람에 대하여 아무런 책망과 비판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문제를 분명하게 비판과 책망을 하며 교회에 악을 조성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자를 교회에서 추방하라 권고 하였습니다.

1.2) 사랑하는 교회 형제나 자매가 죄의 길에서 돌이키게 하기 위해 비판과 책망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비판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책망을 할 때 "너는 잘하고 있느냐?"는 비판을 받기 싫어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나 자매가 분명하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비판과 책망을 통해 그 죄의 길에서 돌아서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증거입니다. 죄에서 돌아오게 하는 비판과 책망은 레위기 19:17-18의 말씀을 순종한 것입니다.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1.3) 거짓된 가르침(이단)이 교회에 들어오게 된 경우 적극적으로 비판을 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에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이단은 신천지입니다. 처음에는 교회에 새로운 신자가 등록을 하면 모두 환영을 합니다. 그리고 그 새 신자가 열심히 하면 교회는 너무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씀을 이상하게 해석하여 말을 합니다. 자세히 알아보니 진리가 아닌 이단에서 주장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런 경우 적극적으로 진리를 위해 목사나 장로가 그리고 교사들이 나서서 그들의 거짓된 주장을 비판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너무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교회에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유는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고전5:6,갈6:9)“을 막기 위함입니다.

1.4) 마지막으로 바른 비판은 교회와 성도에게 유익을 주지만, 잘못된 죄책감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위에서 말한 경우 말고도 여러 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와 사랑하는 형제자매를 위해 여러 방면에서 비판하는 자가 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비판을 하는 일이 우리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되는 경우입니다. 비판과 책망을 한 후에 "비판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위반했다는 죄책감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비판하는 일을 했음에도 비판하는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회개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죄책감의 결과로 신앙 생활에 기쁨을 빼앗기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시기와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 남을 비방하게 되기도 합니다만, 우리의 비판과 책망으로 한 사람이 회개로 돌아오고 교회가 올바른 길로 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판에 대한 것에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죄책감에 빠지지 않고 바른 비판에서 오는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그러면 예수께서는 오늘의 말씀에서 명령으로 왜 "비판을 하지 말라" 하셨을까?

2.1) 본질적으로 죄된 인간의 본성 때문에 자동적으로 남을 비판하는 경향성이 있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경건하고 진실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늘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무절제한 비판을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것(흉을 보는 것)이 우리가 얼마나 좋아하는지에 대한 경험입니다. 학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선생님이 너무나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학생들하고도 말도 안되는 것으로 다투곤 합니다. 학원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 경우 그 선생님은 자신이 먼저 반찬을 먹기 전에 다른 선생님들이 먹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우리는 출근을 하면, 커피를 가지고 모여서 그 선생님이 전날에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비판을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딴에는 그런 사람이 선생으로 있으면 학원에 문제가 많이 생기게 될 것이라 걱정을 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이 조금 넘어 그 선생님이 학원에 사표를 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이 지나자 선생님들은 같이 모여 커피를 마시는데 즐거움이 사라진 것을 알았습니다. 흉볼 대상이 없는 커피 마시는 시간은 재미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공부를 위해서는 모이지 않아도 누군가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모입니다.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위선적인 모습입니다. 어느 것이 신앙에 좋은 것인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임을 참여하는 것보다 남을 비판하는 모임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모습을 아시고 "비판하는 자가 되지 말라" 하신 것입니다.

2.2) 시기하고 이기적인 욕심에서 나오는 비판을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생기는 다툼의 대부분은 말로 인해 일어납니다. 그 다툼은 다른 형제나 자매를 시기하고 이기적인 욕심으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위한 것이라 말을 하며 열심히 비판을 합니다.

야고보서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저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만일 다른 형제 자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먼저 자신의 마음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시기와 이기적인 욕심으로 인해 오는 것인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비판은 예수님이 책망하시는 외식하는 자의 비판이 될 것입니다.

2.3)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죄)를 보지 못하면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실수)만 보려 하기 때문입니다. 
"들보를 가지고 있는 자가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는 것은 바로 전형적인 외식하는 자의 특징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내가 비판하는 사람보다 더 큰 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네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하셨습니다. 눈에 들보가 들어 있는 사람이 스스로가 다른 사람의 티(잘못이나 실수)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기 눈에 있는 들보(커다란 죄)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잘 보이는 것이 자신이 영적으로 성숙했기 때문이라는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아주 큰 착각입니다. 그것은 자기의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가 크기 때문에 그 들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눈에 다른 사람의 티(실수)가 보이기 시작하면, 먼저 자신의 눈에 들보(죄)가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고자 비판하는 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전형적인 외식하는 자입니다. 

외식하는 자란? 자신의 죄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죄만 크게 보고 정죄하는 태도를 가진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외적인 모습은 경건한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내적으로 많은 죄를 회개하지 않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실수에 대한 외식적인 비판과 책망은 다른 사람을 죄에서 돌아서게 할 수 없습니다. 도리어 분노하게 하여 다툼이 일으킬 뿐입니다.

2.4) 남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나 자신이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2:1-2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줄 우리가 아노라.

마태복음 7: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이전에 했던 자신의 말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에 그들의 잘못된 행동에 비판을 받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이전에 했던 말과 다른 행동이 다른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얼마나 창피한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하물며 우리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했던 말로 심판을 받을 때 얼마나 두렵겠습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다른 이를 비판을 하는 자가 되는 것은 엄청난 위험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2.5) 공동체의 화평을 위한 것입니다.  

야고보서 3: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화평한 교회와 다투고 갈라지는 교회에서 구별되는 것이 언어에 있습니다. 화평한 교회는 형제자매 간에 서로를 존중하며 실수를 감싸주며 기도해 줍니다. 하지만 다툼이 일어나는 교회는 말 한마디마다 조심해야 합니다. 다툼이 있는 교회에서 목사가 조금이라도 말을 실수하면, 그 온 교인들에게 이상하게 말이 와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고치려고 할수록 더욱 이상해지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있는 성도 간의 교제가 무엇입니까? 말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기쁨의 여운이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가라앉고 처지게 됩니까? 그것은 교제에 참여하였던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나오는 결과입니다. 겉으로 경건한 모습인 체하는 외식적 교인이 많은 교회는 절대로 화평할 수 없습니다. 어느 누가 외식하는 자가 인도하는 모임에 참여하여 즐거운 교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외식적인 비판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임을 명심하시고, 우리 성도들은 진실함과 겸손으로 서로를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에 참된 기쁨이 넘치는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늘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마태복음 7:1-5절은 "비판을 하지 말라"는 금지를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의 말씀에서 "비판을 하지 말라" 하신 것은 "외식하는 비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시는 가르침의 핵심은 남의 눈에 있는 작은 티(실수)를 잘 발견하여 비판하면서 정작 자기 눈에 있는 들보(죄)를 보지 못하는 태도를 가진 '외식하는 자'에게 하는 금지입니다.  이것에 더하여 예수님은 실천적인 방법으로 제자들이 다른 형제를 판단하거나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할 것을 권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형제를 위하여 우리 눈에 있는 들보를 먼저 빼어 밝은 눈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만 사랑한다 하지 말고 실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들 모두가 외식하는 비판에서 벗어나 진실함으로 가득한 사랑의 권고와 위로를 나누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어서 성찬식이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을 묵상하시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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