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0.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6:31-34
제목: 믿음의 성장을 위한 예수님의 가르침
마태복음 6:31-34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옛날에 어떤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행자가 산을 넘게 되었는데, 그는 적당한 크기의 돌을 볼 때마다 돌을 여행 가방에 집어 넣었습니다. 가방이 무거워져 걷는 것이 너무 힘들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 돌을 버리지 않고 엄청난 땀을 흘려 가며 기어이 산을 넘었습니다. 그가 산을 내려오면서 길에 널려 있는 돌들을 보며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산을 넘는데 돌은 도움이 아닌 짐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이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입는 것으로 염려하며 살고 있다면, 믿음이 작은 자라는 책망을 받을 뿐 아니라 이방인과 같다는 더 강한 책망을 받게 됩니다.
1.1) 실제로 성도들이 가장 많이 경험하는 영적인 싸움은 염려와의 싸움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염려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의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가 풍성하게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잊어버렸기에 자주 넘어지게 됩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도 단순히 염려를 감정적인 문제만으로 보지 않으시고,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임을 아시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정확히는 염려를 계속하는 제자들을 향해 이방인과 같은 사람이라 책망하신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방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확신하는 믿음이 없었기에 말씀으로 열매를 거두는 자가 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가복음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1.2) 이방인과 같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과 정반대의 방향으로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방인이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는 자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모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지 않은 자들입니다. 이방인들은 구원을 베푸시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정확히는 늘 불확실성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기에 언제나 염려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더 쌓아 놓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은행 계좌에 있는 돈이 조금이라도 줄어 들면 불안해 합니다. 그래서 이방인 같은 신자는 은행 계좌나 연금이 충분하지 않은 것을 불안해 하며 염려합니다.
무엇인가 부족한 것이 있다고 생각될 때, 이방인 같은 신자도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참 신자도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직 참 신자만이 하늘 아버지께서 자신들에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합니다. 그러나 이방인 같은 신자들은 자신들이 기도하는 것이 채워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스스로 책임을 지고 필요한 것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이 채워질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그 불확실성이 그들을 염려하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지속적으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염려하지 말고, 모든 필요를 넉넉히 주시는 아버지가 계심을 강조한 것은 그들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염려하여 간구하는 것은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실제 생활은 불신자의 모습이라는 강력한 책망입니다.
2. 예수님의 책망은 단순히 하나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의식주에 대한 염려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들의 믿음을 성장시켜 하나님 안에 있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2.1)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을 성장하게 하는 시작은 염려와 걱정에 대한 시각에서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 필요한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는 문장의 의미는 단지 지적으로 무슨 상황인지 이해를 하였다는 의미만을 가르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아신다”는 말씀은 아버지로서 자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필요를 공급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도 자녀에게 가장 적합한 시간과 가장 알맞은 장소를 선택하여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이방인과 같이 염려하는 불신의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우리의 시각을 고정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시각이 자비가 풍성하신 아버지께로 고정되어지면, 우리의 영혼은 안정감을 얻게 되어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2.2)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선순위를 정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신자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왕되심과 다스림을 날마다 원하고 지속적으로 몰두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의 다스림을 따라 세상의 가치기준 대신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삶에서 제일 우선으로 삼는 삶을 살겠다는 믿음의 고백이며 다짐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와 같은 우선순위를 가지고 실천하는 당신의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십니다. 그것은 마치 식물이 영양분을 받아 자라는 것과 같이 믿음이 자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반대로 염려하는 것이 우선이 되면 우리의 믿음은 자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해 시들어 버리는 식물과 같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우리 마음에 제일 앞에 두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믿음은 자라고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2.3) 기독교 신앙의 놀라운 점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아는 만큼 믿음이 자란다는 것입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많지만 아직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학력이 낮더라도 하나님을 아는 경험을 한 사람의 믿음이 더 크고 좋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믿음으로 열매를 잘 결실하는 사람이 그 교회 담임목사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18세기 미국에 영적 부흥을 이끌었던 신학자이며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기독교사에서 천재 중의 한 명으로 13세에 예일대학교 입학하여 19세에 신학 대학원을 마치고 목회를 하였고 30대에 노샘프턴 지역에서 강력한 회심과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수 많은 신앙서적을 저술했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날 호수 주변을 산책하다가 1시간 정도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되었고, 그후에 그가 고백하기를 ”나의 수 많은 성경적 지식으로도 한 시간 동안 만난 하나님의 임재의 경험에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여 아는 만큼 우리는 믿음에 확신을 가지게 될 것이며 믿음이 굳건하게 자랄 것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성도 모두가 하나님을 경험하여 아는 성도가 되어 믿음이 성장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4) 하지만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제일 우선순위에 두며 살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박해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10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제가 지금까지 만나본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모두 다 환난과 고난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대로 나이가 들어 신앙을 포기하거나 믿음이 작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려움이 없이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며 살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만난 한 분은 40대 자매님으로 서울에 자기 갤러리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지위가 있는 분이심에도 엄청 겸손하셨습니다. 저는 정말로 이 분이 겸손한 것인지 아니면 겸손한 척하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죄로 오염된 마음에서 나오는 자기 중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겸손한 믿음을 가지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물어봤습니다. 자매님은 지금까지 어떤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그렇게 겸손한 모습일 수 있습니까? 그분의 대답은 신앙에 열심이던 대학생 때 중병에 걸려 죽기 직전까지 갔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좋아하며 칭찬을 하던 주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경험도 하였답니다. 그 아픈 경험이 세상적인 자랑이나 칭찬들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베푸사 살려 주심을 경험하였고, 지금도 그것을 잊지 않고 다른 사람 앞에서 언제나 나를 낮추려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환난과 박해가 오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환난과 박해는 우리의 믿음이 진짜임을 증명하며 성장하게 합니다.
2.5)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오늘의 은혜에 집중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34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첫째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늘의 염려뿐만 아니라 내일의 일을 미리 당겨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 바로 내일의 문제를 오늘 가져와서 염려하는 것입니다. 34절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오늘의 괴로움은 오늘로 족한 것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은혜로 어려운 상황에도 염려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참으로 고생이 많습니다. 그런데 내일의 염려까지 가져와 염려를 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은 시들어 버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염려는 우리로 하여금 아주 부정적인 상상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 있어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쁨을 빼앗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게 하시고 오늘의 나의 무거운 짐은 십자가에 가져 가 오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을 자라게 하는 지혜입니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두번째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미래를 대비하지 말라는 말로 곡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분이 자신은 내일 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맡겼기에 아무런 보험도 저축도 하지 않는다고 신앙을 간증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지만 하나님이 먹이신다는 말씀을 믿고 자신도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고 간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씨앗을 준비하고, 내년을 대비하여 땅을 갈아 두고 거름을 주는 농부를 칭찬하시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는 결국 염려하는 자가 됩니다.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반면에, 올바른 신앙의 태도는 미래를 대비하는 준비를 합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으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염려를 하지 않고 믿음을 자라게 하는 지혜입니다.
잠깐 대비와 염려의 차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대비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염려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비하는 사람이 그 대비를 위한 준비에 집착을 하기 시작하는 때부터 염려가 마음 속에서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런 집착이 더 강해질수록 염려는 더욱 커지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비하심으로 베푸시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하지만 그 대비하는 것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가 지금하는 대비가 집착때문에 하게 된 행동인지 구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3.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씀을 드린 노력을 하였더라도 염려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경우에 제가 사용하였던 염려를 물리치는 방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하루는 밤에 잠을 자기 직전에 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다음날부터 미래에 대한 염려와 자녀에 대한 걱정이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염려를 하다 보니 나 자신의 무능력함과 하나님이 나에게 물질을 주시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으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읽기도 싫어지고, 기도도 하기 싫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나의 노년에도 나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주실지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시작한 미래에 대한 염려가 어느새 커다란 바위가 되어 저를 내리 누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새 염려라는 어두운 구덩이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은혜로 시편 42:5, 11절 말씀을 떠올리게 되어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시편은 성전에서 찬양을 담당하던 레위 지파의 고라 자손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성전에 예배에 참석하여 찬양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에 더하여 그의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하는 마음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조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하기를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다”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이 얼마나 낙심으로 인해 좌절해 있었을까 상상해 보시고,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낙심을 이겨내고 하나님을 찬양하고자 했습니다.
시편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제 적용입니다. 한 번 사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염려와 낙심이 내 속에서 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저 자신에게 시편 42:5의 말씀을 가지고 큰 소리로 명령을 하였습니다.
"증복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느냐? 증복아,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기쁨의 찬송을 하게 될 것이다."
반복합니다.
"증복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느냐? 증복아,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내가 기쁨의 찬송을 하게 될 것이다."
저는 염려하는 마음이 들어올 때마다 이 성경 말씀을 사용하여 제 자신에게 명령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소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속적으로 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 정말로 염려가 아닌 하나님을 찬송하고자 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염려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경험하는 즐거움을 누리시며 찬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