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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6 주일설교.
예수님의 권위.
누가복음4;38-41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드러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

권위는 단순히 힘이나 능력이 아니라, 정당하게 어떤 존재를 다스릴 수 있는 권리와 능력입니다. 
경찰은 총을 가졌기 때문에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부여한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권위는 누군가에게 받은 권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소유하신 권위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어떤 권위를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1.예수님은 창조 세계와 생명을 다스리시는 권위가 있습니다.
4:31-37절에서 예수님은 갈릴리 가버나움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신 후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십니다. 거기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누가는 의사였습니다. 그래서 병명을 “중한 열병을 앓고 있다” 말하는 것은 단순히 열이 난 것이 아님을 알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고열로 생명에 위협이 되는 병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간청하였고 예수님은 말씀으로 치료하셨습니다.

1)예수님의 권위는 병든 여인의 치료속하시는 말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을 수종 들었습니다.“
눅4:34처럼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는 것이면, 귀신은 타락한 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해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열병은 인격체가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열병을 꾸짖는 것으로 치료하시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명령하셔서 치료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누구시기에 이런 권위를 가지고 계시것일까요? 인격적인 존재가 아닌 병조차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는것일까요?
우리는 창세기1장의 창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1장에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모든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면 빛이 생겼습니다. “땅은 풀과 채소를 내라” 하시면 그대로 되었습니다.
요한복음1:1-3에서는 이렇게 예수님의 정체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예수님은 창조의 때에 계셨던 창조의 말씀이십니다. 지금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께서 귀신에게뿐만 아니라, 열병에게도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병 자체는 인격이 없지만 이 세상에 속한 것이므로 창조주의 권위있는 말씀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영적인 세계에뿐만(귀신을 쫓아내) 아니라, 죄로 인해 깨어진 창조 세계(열병을 쫓아냄) 전체를 회복하시는 창조주로서의 권위가 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2)예수님의 권위는 병 나은 여자의 행동을 통해서도 알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병이 나더라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그 여인에 병이 낫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건강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병을 쫓아낼뿐만 아니라, 회복받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의 뜻을 행하는 섬기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완전히 회복된 후의 행동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여러가지 다른 상황에 어려움에서 회복되었을 때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회복을 받은 사람은 회복된 자신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섬김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은혜에 대한 올바른 반응이며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3)예수님의 권위는 긍휼히 풍성한 권위입니다.
누가복음4:40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예수님은 말씀으로 인격체인 악한 영과 비인격체인 병을 그리고 세상 모든 존재들을 굴복하시는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접근하기 어려운 권력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나 예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자 하는 자들에게 고치시는 따뜻한 권위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어린아이들은 사람의 숫자로 세지도 않았습니다. 병든 자들은 죄를 지은자들이 무시를 하였습니다. 눈먼자로 태어났다면, 부모의 죄 때문이라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과 병든 자들이 그리고 몸이 불편한 자들이 오는 것을 환영하셨습니다. 그리고 긍휼히 여기사 그들에게 일일이 손을 얹고 고쳐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이시며, 왕이십니다. 그래서 온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도 큰 권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일일이 만져주시어 치료하신 분입니다. 권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의 권위는 차가운 권력이 아니라 따뜻한 긍휼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바라고 오는 자들을 모든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권위있는 만왕의 왕으로 계십니다.

2.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반응입니다.
귀신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4:34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4:41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치료받는 사람들도 제자들도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습니다.
이런 긴장은 누가복음 내내 유지되다가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이 있은 후에 직접적으로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알려 주십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나님의 거룩한자인 것을 명확하게 알고 순종한 것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부터 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듣는 것으로 그리고 ChatGPT나 제미나이를 통해서도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알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면, 그들은 마치 귀신들이 예수님을 아는 것과 다를바 없습니다.
야고보서2:19은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그러므로 신자들은 단순히 지적인 정보를 아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믿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예수님의 권위를 잘 알수 있을 것이며, 그 권위로 부터 오는 위로와 평안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3.예수님은 권위로 귀신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하셨습니다.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할때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습니다.
왜 예수님은 귀신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일까요?

1)예수님의 정체는 귀신의 증언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복음을 통해 드러나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세상에 알리는 일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맡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귀신이 증언하는 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구원을 전하는 복음은 천사들에게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오직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명령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특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어떤 존재에게도 이 특권을 주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주셨습니다.
천사들은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놀라운 능력은 직접 경험하는 증인이 되지 못합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알리고 복음 사역을 돕는 역할만 할 뿐입니다.

사도행전10장에서 분명하게 이 특권이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있음을 보여줍니다.
고넬료에게 천사가 나타났지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베드로를 부르게 하여 베드로를 통해 복음을 듣게 하시고 성령을 내려 주셨습니다. 고넬료의 온 가족이 베드로의 전도를 통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빌립을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보내 말씀을 풀어주어 메시아가 누구신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에티오피아 내시는 빌립의 말씀 해석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 들였습니다. 믿음의 징표로 에티오피아 내시는 세례를 받았습니다.

2)예수님의 사역은 언제나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 는 말이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간에 교회에 도움이 되거나 복음 사역에 도움이 되면 괜찮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목적이 좋다고 해서 어떤 수단이든 사용해도 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도리어 이런 것을 금하고 있습니다. 
귀신이 아무리 진리를 말하였더라도 그 귀신은 악한 영입니다. 결단코 그 존재들은 선한 의도가 아닙니다. 악한 영인 귀신이 예수님에 대한 외침은 예수님의 병든 자들을 치료하시어 메시아의 시대가 도래한 선포를 방해하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단호하게 귀신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도행전16장에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전도를 하고 있을 때에 귀신들린 여종이 바울과 동역자들을 따라와 소리 지르며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놓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여러날을 외쳤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종이며 구원의 길을 전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귀신들린 여종의 외침에 심히 괴로워하여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악한 존재가 아무리 진리를 말하더라도 그것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방해하고자 한 것이었기에 바울도 알고 괴로워 했고 결국은 그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

3)예수님이 귀신들의 외침을 금하신 것은 아직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 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에 대한 분명한 증거는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후의 일입니다.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야 실질적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고 믿었으며, 목숨까지도 드릴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오직 예수님 자신만이 그리스도인 줄 알고 있는 때입니다.

4.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의 질병과 문제들을 해결하여 주시는 능력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귀신도, 질병도, 창조 세계도 모두 다스리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동일한 권위를 가지신 우리의 구주이십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지금도 죄인을 살리고, 상한 자를 고치고, 낙심한 자를 일으키고, 회복된 사람을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우시는 사랑의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맡기고, 그 권위 아래서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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