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01.25.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7:15-20, 요한복음 15:4-5
제목: 성령의 열매로 증명되는 참된 신앙

마태복음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요한복음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지난주에 두 종류의 선택에 대한 말씀을 전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과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것어가는 것입니다. 이 선택의 결말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은 사람은 생명을 얻고,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걸은 사람은 멸망을 당하는 결말입니다. 
그러나 좁은 문을 선택하여 좁은 길을 걷는 것으로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오히려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사람은 그가 구원받은 증거라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설교에서 우리 앞에 좁은 문과 넓은 문이 있으니 선택을 해야 한다는 설교를 하였지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이 필연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영생을 소유한 자로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은 영생에 대한 확신에서 온 당연한 행위입니다.

오늘의 설교를 전하겠습니다.
1. 교회 안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1.1) 그리스도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이 좁은 문 앞에 서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심지어 좁은 문으로 들어선 자들에게조차도 거짓된 진리를 주어 그 길을 걸어가지 못하도록 혼동을 주는 일을 하는 자들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들이 바로 양의 옷을 입은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1.2)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입니다.
이들은 교회 내부에 있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교회 내부에서 양의 옷을 입은 노략질하는 이리입니다. 이들은 교회에서 지도자들인 목사나 장로나 교사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이 양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나 이전에 선지자들은 양의 털로 만든 옷을 입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양의 털로 만든 옷을 입었다는 말은 겉으로는 겸손과 헌신적인 지도자로 보여진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1.3)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에는 언제나 듣기에 달콤하지만 중요한 진리가 빠져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설교합니다. 그러나 죄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전하지는 않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복 주심에 대한 가르침을 강조하기 때문에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줍니다. 하지만 우리가 죽기까지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는 주제에는 잠잠합니다. 천국에 예비된 좋은 것에 대한 말씀을 강조하기를 좋아 하지만, 불신자에게 있게 될 지옥의 고통을 설교하거나 가르치기를 거부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성경에서 지옥을 언급하는 이유는 겁을 주기 위한 것이지 "사랑의 하나님이 진짜로 사람들을 지옥에 보내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천사를 가르치지만, 악마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좋은 말씀은 가르치지만,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우리 대신 받으신 속죄의 가르침은 가르치지 않습니다. 

1.4) 거짓 선지자들이 불균형적으로 가르치는 목적은 양들에게 있는 것을 노략질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선지자의 모습으로 다가와 우리의 것을 빼앗아 가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생명의 길로 걸어가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과 의지를 빼앗아 좁은 길로 걸어가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가 좁은 길로 걸어가는 열정과 헌신을 빼앗는 방법은 잘못된 가르침을 통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못된 가르침이라 해서 이상한 말이라 여기시면 안 됩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은 우리가 듣기에 아주 달콤한 말들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좁은 길을 걸어가며 고난을 받는 것을 이상한 것인양 여기게 합니다. 결국은 좁은 길을 포기하게 만들어 생명에 이르지 못하게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가르침이 위험한 이유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기에 성도들이 그 가르침을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받아 들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지도자를 분별할 때 겉으로 드러나는 직분이나 은사, 부드러운 이미지, 그리고 인기를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2. 이스라엘 역사 속에 있었던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의 결말을 살펴 보겠습니다.
2.1) 남 유다에 하나냐라는 거짓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남 유다가 우상숭배와 죄로 인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 참 선지자 예레미야는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들여 바벨론에 항복하라 했습니다. 그러나 만일 남 유다가 항복하지 않으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 예언을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냐는 예레미야와는 정반대로 “2년 안에 빼앗겼던 모든 성전 기구와 잡혀간 포로가 돌아올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거짓 선지자 하나냐의 말은 아주 듣기가 좋은 것이었습니다. 항복하지 않으면 포로가 된다는 예언보다 지금까지 바벨론에 잡혀간 자들이 돌아오고 회복된다는 예언이 얼마나 듣기가 좋습니까? 하지만 거짓 선지자와 그의 말을 들었던 자들의 결말은 멸망이었습니다. 먼저 2년 안에 회복된다는 달콤한 예언을 했던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그해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도 항복도 하지 않은 예루살렘은 8년 후에 성이 완전히 무너졌고 그 주민들은 죽임 당하였고 살아 남은 자들은 포로로 끌려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참 선지자 예레미야를 박해했던 당시 유다의 왕 시드기야의 결말은 더욱 비참합니다. 

열왕기하 25:7
바벨론 군대가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그의 눈 앞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

2.2) 신약에서는 사도행전 13장에 바예수라고 하는 유대인 거짓 선지자이자 마술사가 나옵니다. 이 거짓 선지자는 바울이 복음 전하는 것을 방해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거짓 선지자에게 얼마 동안 앞을 보지 못하게 하는 심판을 선포하였습니다. 남의 일을 알려준다는 선지자가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2.3)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들었던 사람들의 결말이 나옵니다.
그들은 적그리스도를 도와 이적을 행하며 사람들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하고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그들의 말을 따랐던 자들은 죽임을 당하고 거짓 선지자들은 유황불 붙는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계 19:20-21).

2.4) 현대에도 거짓 선지자와 같은 목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설교의 핵심 메시지는 ‘긍정적 사고‘입니다. 그들은 원죄와 죄로 인해 인간이 비천함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대신, 인간의 가능성에 무한한 잠재력이 있다는 설교를 합니다.
한 마디로 자기계발과 심리학적인 위로가 그들의 설교의 주된 내용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설교는 대중들에게 아주 인기가 아주 좋습니다. 
어느 교회는 인기가 좋았던 시절에 주일 예배 출석자 수가 1만 명이 넘고, TV 설교 프로그램의  전세계 시청자 수가 매주 2000만명을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그 교회는 사회적·경제적 변화 속에서 후계자 계승과 재정 등에서 점차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에는 파산하였습니다. 그 목사는 스스로를 세워 대중적 명성을 얻었지만, 그가 세운 교회는 최종적으로 파산했습니다. 
그후에도 거짓 선지자들과 같은 목사들은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슷한 결말을 맞이합니다.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교회들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사고나 감성을 자극하고, 사람의 죄로 인한 무능을 설교하지 않습니다.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자들이 심판을 당하여 멸망을 당하게 되는 종말을 말하지 않습니다. 이 교회들은 참석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부담도 주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 참석자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보다 사교적인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결국 코로나 사태 이후에 이런 교회들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지 않고 다녔던 자들이 모두 떠나 지금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결국에 회개하는 목사님들도 계시지만, 어떤 목사는 프로그램과 직원들을 교체합니다. 그 행동들은 누가 거짓 선지자인지를 보여 줍니다. 

3. 우리는 우리에게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구별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16-20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는 그들이 거짓 선지자인지 참 선지자인지 그들의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전해진 말씀이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늘 심은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서야 거짓 선지자들이 양들에게서 빼앗아 간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설교 당시에 그 설교가 나에게 좋고 나쁨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 그 설교를 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의 열매를 맺는 것으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참된 진리를 선포한 교회는 더욱 사랑하는 것이 증가되는 열매를 맺을 것이고, 거짓된 말씀을 전해 받은 교회는 성도들 서로 간에 다툼과 경쟁이 증가하는 나쁜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어떤 거짓된 교회 지도자는 교회 건축을 하는 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라고 선포하여 성도들의 물질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은 성도들은 가난이라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물론 교회에 건물이 필요하여 목회자가 헌금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헌금을 최선을 다하여 많이 하는 것이 복의 지름길이라고 설교하는 것은 거짓된 가르침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의 참된 지도자의 올바른 헌신의 요구는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를 더욱 가까이 하게 도와주어 기쁨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4. 열매 맺는 나무를 우리에게 적용을 하겠습니다.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방법은 없을까요?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좋은 나무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다는 사실은 참입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의 의도는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을 향한 경고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불행히도 못된 나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에덴 동산에 좋은 나무로 심으셨습니다. 하지만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은 모두 다 못된 나무가 되어 나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형제 간에 죽이고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고 서로를 헐뜯고 살인을 하는 자들이 되었고, 매 순간 악한 생각이 끊임없이 마음에 생산되고 있는 못된 나무가 된 것입니다. 
못된 나무가 된 온 인류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가망성이 전혀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좋은 나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를 좋은 나무이신 예수께 접붙임 받도록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좋은 나무에 접붙여짐으로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1:17-18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요한복음 15:4-5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5. 마무리와 적용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여정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거짓된 자들을 보내 미혹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 스스로 좁은 길에서 떠나 열매가 없는 자로 살아가게 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못된 나무 가지였던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유일한 방법은 좋은 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붙어있는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좁고 협착한 길을 걷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나쁜 나무 가지임에도 좋은 나무이신 예수님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나 이 아름다운 열매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을 통해 맺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나쁜 나무 가지인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좁은 길을 걷으면서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으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생명의 나무 되신 하나님, 우리가 양의 옷을 입은 이리들을 분별할 수 있는 영적 지혜를 갖게 하옵소서. 우리가 스스로 열매 맺으려 애쓰기보다,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 우리를 좁은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