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5.2026. 부활절 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3:15, 로마서 4:25, 요한일서 4:10
제목: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의미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한일서 4: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느니라.
오늘은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며 예배하는 날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부활절을 기독교인들만이 자신들의 종교를 드러내며 축하하는 날로 생각합니다. 심지어 기독교인들은 부활절을 신약 성경에만 등장하는 갑작스러운 기적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우연히 일어난 돌발 사건이 아닙니다. 부활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직후,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서 선포하셨던 ‘첫 번째 복음, 즉 원시 복음‘이 수천 년의 세월을 걸쳐 완성된 언약의 성취입니다.
오늘은 인류 최초의 복음인 창세기 3:15의 약속이신 “여자의 후손”이 우리 죄를 사하시는 화목제물이 되신 것과 부활하심으로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승리가 무엇인지를 설교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리라 약속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1.1)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창세기 3:15절은 죄인된 인류에게 주시는 최초의 복음, 즉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이 누구이고, 정확히 언제 여자의 후손을 보내겠다 말씀하여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첫 아들 가인이 태어났을 때, 가인이 여자의 후손인 것으로 오해를 했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종교에서 여자의 후손, 즉 구원자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보내어 인류를 구원할 자인냥 말을 하고 자신들의 경전을 만들어 전하고 있습니다.
하와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후에야 가인은 하나님이 약속한 여자의 후손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현시대의 사람들도 하와처럼 엉뚱한 사람을 메시아로 착각을 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의 타종교의 지도자들과 교주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이 아닙니다. 타종교를 비방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우리 자신들의 영원한 생명이 걸린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그러므로 여자의 후손이 누구인지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마귀의 머리를 깨뜨리시겠다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1.2) 여자의 후손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해 주고자 하는 것일까?
첫째로, 구원을 가져올 메시아는 여자의 후손으로 온다는 예언입니다. 하와는 단지 여자에게 태어나는 자를 여자의 후손으로 잘못 이해를 하였습니다.
두번째는, 사탄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적 싸움에 승리로 이끌 자가 여자의 후손이라는 약속입니다.
세번째는, 여자의 후손이란 말 자체가 초자연적인 출생을 예언하는 말입니다.
네번째는,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여자의 후손이라는 말은 죄가 없는 자로 이 세상에 온다는 말씀입니다. 남자의 혈통으로 말미암아 육신으로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 아래에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어 무죄한 사람으로 탄생하신 분이 예수라고 선언합니다.
마지막으로, 메시아를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이 세상에 보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여자의 후손으로 탄생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시간표에 있는 약속의 때에 도달한 것을 의미합니다.
2.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여자의 후손 예수를 죄 있는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요한일서 4: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아들을 보내어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삼으셨느니라.
2.1) 화목제물이란?
화목제물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을 위한 제물입니다. 화목제를 드린다는 말은 죄를 덮다 또는 죄를 속죄하다라는 의미입니다. 화목제사는 영어로 Peace Offering 또는 Fellowship Offering입니다.
구약에서 화목 제물로 드리는 소나 양 그리고 염소는 흠이 없고 정결한 짐승이어야 했습니다. 신약에서는 죄와 흠이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렸습니다.
화목제사의 목적은 죄를 속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는 것으로 하나님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갖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화목제물을 드린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진 표시로 드린 제물을 제사장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대표하고 제사를 드린 자는 사람을 대표하여 관계회복의 기쁨을 식사를 통해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성찬식에서 빵을 나누어 먹은 것은 하나님께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몸을 기념하며 하나님과 화목된 자라는 표시입니다. 또 성찬식에서 예수님의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성찬식에 나누어 마시는 것은 우리 죄를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음과 그 피로 세워진 새 언약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2.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화목제물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는 없었는가?
예수님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야만 했는가에 대한 대답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진노 때문에 여자의 후손으로 무죄하게 태어난 예수님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화목제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죄인은 스스로의 행위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해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죄인인 사람은 자신의 노력으로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진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진정시키려는 행위들은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더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진정시키고 기쁘시게 하려는 죄인들의 노력은 마치 한센병(나병)으로 피부의 진물이 흐르는 자가 음식을 만들어 왕께 드리는 행위와 같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피부병 환자가 만든 음식은 왕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쾌감을 주고 분노하게 하는 헛된 노력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죄로 더러워진 사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죄인 스스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의 죄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만이 아담의 죄로부터 자유합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 여자의 후손으로 무죄하게 태어난 예수님만이 거룩하신 하나님께 화목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화목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가운데 예수님 외에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2.3) 예수님이 화목제물이 되어 죄인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모든 계획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우선적인 순서를 섞어서는 안됩니다. 특히나 우리의 영생에 관한 것에서 있어서는 더욱 신중하게 살펴야 합니다.
분명하게 모든 구원을 계획하시고 시작하시고 완성하신 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성부 하나님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를 이 땅에 여자의 아들로 출생하게 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우리의 구원에 대하여 무엇보다 더, 무엇보다 자주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2.4) 구원에 대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을 정리하겠습니다.
성부 하나님은 구원에 대한 계획을 준비하시고 시작하시고 완성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의 계획을 자발적으로 순종(실행)하심으로 이 땅에 오셔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성자 하나님이 실행하여 완성하신 구원을 죄인된 사람들에게 적용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 또한 믿음으로 거듭난 성도를 이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여 주십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로마서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매년 부활절을 기념하며 우리는 예배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드립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맞이하여 교파 간의 분열이 종결되고 연합되기를 바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맞이하여 전쟁이 종결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부활절은 단순히 분열과 전쟁이 멈추는 것을 소망하며 기념하는 날이 아닙니다.
3.1) 예수님의 부활은 창세기 3:15의 말씀의 성취입니다.
창세기 3:15의 말씀으로 비추어 십자가와 부활을 살펴 본다면, 여자의 후손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뱀이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은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가장 강력한 힘인 사망을 무너뜨린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창세기 말씀처럼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머리를 부술 것이라는 예언이 성취된 날입니다. 부활은 수천년간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날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승리한 왕의 백성인 성도들에게 우리의 영적인 전투도 승리할 것임을 확신하게 해주는 날입니다.
3.2) 부활은 하나님이 화목제물을 받으시고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선언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속죄가 완전히 이루어졌다는 하나님의 공식적인 확인입니다. 즉,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께서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받으셨음으로 예수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는 확실한 선언입니다.
의롭다는 선언이 역사적인 실체인 부활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이제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에서 살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죄를 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함으로 의로운 자로 살 수가 있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자로 우리의 미래는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 품 안에서 누릴 영원한 복락입니다.
3.3) 그러나 만일 부활이 없었다면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부활만을 생각하면 부활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인식하지 못할 수가 있습니다. 마치 매일 호흡을 하며 사는 우리가 이 숨을 쉬는 공기의 소중함을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공기의 소중함을 아시고 싶으면, 수영장에 가셔서 물 속에서 10분을 버티며 계시면 됩니다. 마찬가지 방법으로 부활이 없었다면을 가정하여 그 결말을 유추할 때, 우리는 부활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인 줄 깨달게 될 것입니다.
첫째로,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지 못했다면, 예수님의 화목제사가 하나님께 열납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여전히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자인 것입니다.
두번째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 받는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없었다면,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 받는다고 전하는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
세번째,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수명이 다하면, 우리는 하늘 나라에서 다시 눈을 뜨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을 소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이 없었다면, 이것은 헛된 꿈일 뿐입니다.
네번쩨, 부활이 없었다면, 오늘 부활을 기념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전세계 기독교 교회들은 세상을 기만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의 확실한 의미를 알고 기뻐하시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활이 우리 기독교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이해하고, 부활이 우리 신앙의 근거임을 확실히 알고서 부활의 기쁨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4.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수천년 전의 예언의 말씀이 성취되었고, 의롭게 되는 길이 열린 이 엄청난 부활을 믿지 않는 것일까요?
사람의 죄로 인해 오염되고 왜곡된 마음이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여러가지 이유를 갖다대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정녀의 출생을 부정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자가의 죽음을 저주 받은 자로서 죽은 것이라 조롱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나무 위에서 매달려 죽는 죽음을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받은 것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신명기21:23).
당시 로마인들은 로마에 반역한 죄인을 십자가에 매달아 온갖 수치를 주고 고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구원자가 아닌 죄인으로 여기게 하여 믿지 않게 하였습니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부활절을 단순히 기독교의 기념일 정도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활절을 일상적인 공휴일보다 못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유는 부활절은 일요일이기에, 어차피 쉬는 날이기에 하루를 더 쉴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을 다른 데에 관심 두도록 유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성탄절을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세일 기간으로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에 구세주의 탄생에 대한 의미와 소중함과 기쁨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마귀는 부활절을 단순히 기독교 행사로만 알도록 사람들을 속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에게 속은 사람들은 부활절 예배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5. 고등학교 시절 제 고향 도시는 정말로 성대하게 부활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도시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부활절 예배가 축제처럼 드려지는 것을 모두 다 알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비그리스도인 고등학교 친구가 자기도 부활절 새벽 예배에 가고 싶다는 요청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친구는 저와 함께 부활절 예배를 드렸고 그는 정말로 놀라와 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정으로 부활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고 있으며, 부활절을 소중한 날로 느끼고 있습니까? 오늘 부활절 예배에는 어떤 기대감과 기쁨을 가지고 참석하셨나요?
만일 마음에 부활에 대한 참 기쁨이 없다면, 그것은 부활이 성도들에게 주는 엄청난 유익을 모르기 때문이거나,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세상 사람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한 주간 하나님께 부활절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유익을 충분히 깨닫고 기쁨이 넘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또한 그 기쁨이 이 순간뿐만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도 예수 부활의 기쁨과 소망이 넘치기를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우리에게 부활을 주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예수 부활의 기쁨을 우리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넘치는 부활의 기쁨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