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9.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4:16-24
제목: 인간의 도성과 문화/문명
창세기 4:16-24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에녹이 이랏을 낳고 이랏은 무후야엘을 낳고 무후야엘은 므드사엘을 낳고 므드사엘은 라멕을 낳았더라.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였더라.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로다 하였더라.
창세기 4:16-24절의 말씀은 인류 최초의 살인자였던 가인이 에덴 동쪽 놋 땅에 정착하며 세운 가인의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타락한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어떻게 자신들만의 성(도성)을 쌓고 문화/문명을 발전시켰는지, 그리고 그 문화/문명 속에서 하나님의 도성(교회)에 속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설교하겠습니다.
1. 모든 사람은 두 종류의 성(City)에 살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대조적인 두 성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설계하시고 다스리는 하나님의 도성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자신의 안전과 영광을 위해 쌓은 인간의 도성입니다.
하나님의 도성과 인간의 도성이라는 용어는 초기 교부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신의 책인 ‘하나님의 도성’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이라는 책은 서기 410년경 게르만족(서고트족)이 로마를 공격하여 약탈하는 중에 쓰여진 책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로마는 영원하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무너져 가는 로마를 보며 사람들은 우리가 옛 신들을 버리고 기독교를 믿어서 나라가 망하는 것이라 비방을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와 같은 시대의 현실을 가지고 인류 역사의 두 개의 흐름으로 설명을 하였습니다. 하나는 멸망해 가는 로마처럼 인간의 도성은 무너질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원한 생명이 있는 하나님의 도성으로 보았습니다. 두 도성은 단순히 두 개의 도시가 아니라, 두 종류의 삶과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1.1) 하나님의 도성(City of God)입니다.
하나님의 도성의 특징은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도성입니다. 이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겸손과 순종으로 살며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가 속해있는 도성입니다. 이 도성은 현재는 눈에 보이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성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이 땅에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새 예루살렘성, 즉 하나님의 도성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1.2) 인간의 도성(City of Man)입니다.
인간의 도성은 가인이 세운 에녹성에서 시작되어 바벨탑에서 정점을 이룹니다. 인간의 도성은 하나님을 배제하고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도성입니다. 특징은 자기 중심적인 사랑, 즉 자기 욕망입니다. 자신을 위한 권력과 명예와 쾌락을 추구합니다. 인간 중심의 정점인 인간의 도성은 결국 로마처럼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성과 정 반대편에 있는 도성은 바벨론입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최후 심판을 통해 인간의 도성인 바벨론을 완전히 무너뜨려 영원히 이 세상에서 없앨 것입니다(계14:8,18:21)
1.3) 정리하면, 인간의 도성은 자기 사랑을 가진 자들이 세우는 도성이고, 하나님의 도성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 세워지는 도성입니다.
두 도성에 어디에 있으며, 누가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한다면, 이 도성들은 지리적인 장소가 아니라, 삶의 가치관과 방향성에 의해 어느 도성에 살고 있는지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 제사 드리더라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삶이 아니라면, 하나님의 도성이 아닌 인간의 도성에 사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 도성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자들은 결국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것으로 하나님의 도성에 사는 자와 인간의 도성에 사는 자를 구별해서는 안 됩니다. 분명한 것은 가인이 하나님과 대화하고 예배를 드렸을지라도 그는 오직 자신을 위하여 자기를 보호하는 인간의 도성을 쌓고 살았던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교회에 출석하는 자라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의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의 증거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도성에 속한 자들입니다.
2. 하나님을 떠난 사람은 언제나 인간의 도성을 세우게 됩니다.(4:16-17)
2.1) 가인은 “여호와 앞을 떠나” 놋 땅에 정착하여 성을 건설하였습니다. 놋이라는 이름의 뜻은 ‘방황’입니다. 방황하는 자가 되라는 벌을 받은 자, 가인은 역설적이게도 방황이라는 땅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정착할 도성을 쌓은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동일하게 하는 행동의 패턴입니다.
가인은 자신을 위해 에녹성을 건설하였습니다. 홍수 이후에는 바벨탑(도성)을 건설했습니다. 그후에 여러 민족과 나라들이 자신들을 위해 인간의 도성을 건설했습니다. 1000년의 로마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신들을 위한 자들이 만드는 도성은 반드시 무너집니다.
2.2) 가인이 에녹성을 건설한 것은 하나님이 계신 에덴 동산이 더 이상 그가 돌아가야 할 집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가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계시는 에덴 동산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포기하고, 자신이 건설한 에녹성에서 영원히 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집을 통해 안식을 누리는 대신 자신이 지은 인간의 도성에서 안식을 누리겠다고 한 것입니다.
2.3) 가인은 성의 이름을 에녹성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아들의 이름으로 성의 이름을 지은 것은 자기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인정을 받도록 창조된 존재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났기에 이제는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를 스스로 만족시켜야 했습니다. 자식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자신을 위한 도성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사람들은 모두 다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들은 자신을 위해 자신을 보호할 것을 견고하게 쌓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더 열심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재미있는 사례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스카이스크레이퍼 지수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을 완공할 즈음에 그 나라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이 왔었다는 개념입니다.
미국: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1931완공) - 대공황(1929-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시작)이 와서 빌딩에 입주자가 없어서 "'Empty' State Building"이라 불림.
말레시아: 페트로나스 타워(1998) - 아시아 금융위기.
두바이: 부르즈 할리파(2010) - 글로벌 금융위기 및 국가 부채 위기.
중국: 상하이, 선전 등에서 초고층 빌딩 경쟁적으로 지음 - 실업율 급상승, 경기침체가 현재도 진행중.
이것을 오늘의 말씀에 적용해 보면, 인간이 과도한 자신감으로 스스로를 높이려 할 때, 마지막으로 만들어내는 기념비가 결국 무너진다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 합니다.
3. 문화/문명의 발전은 가인이 시작한 인간의 도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3.1) 그리스도인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문화/문명의 발전이 하나님의 백성들에 의해 먼저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문명은 하나님 중심적인 것보다 인간을 위한 것이 먼저 발전합니다.
가인의 후손들은 인간 자신들을 위한 문화/문명을 먼저 발전시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후손 중 야발은 자신을 위해 광범위한 목축을 통해 경제적인 풍요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그의 후손 유발은 수금과 퉁소를 만들어 사람들이 음악이라는 문화를 누리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기구를 만들어 농업과 산업 발전에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명심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문화/문명의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내려 주시는 일반 은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일반 은총을 통해 받은 지혜를 가지고 스스로의 노력으로 도구와 악기를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성에 사는 사람보다 인간의 도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문화/문명이 더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그 문화/문명에는 아주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없는 문화/문명의 발전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문화/문명의 풍요함은 불행히도 더욱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악함을 드러낼 뿐입니다.
3.2) 인간의 도성에 사는 가인의 후손들이 문화/문명을 발전시켰지만, 그 자체가 처음부터 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회의 문화/문명이 악하게 되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악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구리와 쇠를 통해 기구를 만든 것은 농사와 생활에 여러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도구를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한 것은 악한 자인 라멕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원자력은 순수한 호기심으로 시작을 하여 소량의 연료로 엄청난 에너지를 생산 가능하게 하고자 하였고 지금도 그렇게 사용을 합니다. 하지만 전쟁에서 승리하고자 하고 적대국가를 위협하고자 하여 원자 폭탄을 만든 것도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원자 폭탄이 실제로 사용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제 고향은 청주시입니다. 하지만 청주 시내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입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는 교통사고로 동네 사람들이 죽은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동네 앞길에 아스팔트가 깔리고, 차가 많이 다니기 시작한 후부터는 교통사고가 종종 발생하였습니다. 제 친구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자동차 문화는 엄청나게 편리한 것입니다. 그러나 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하게 되면 그것은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됩니다.
3.3) 비록 문화/문명이 인간의 도성에서 시작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도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사용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는 문화/문명을 지혜롭게 받아들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할입니다.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한 교회에서 청년들과 장로들 사이에 엄청 심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그 교회를 출석하지 않고 있었지만, 그 도시의 대학생들은 다 알 정도로 큰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주일 예배 때, 기타를 치면서 복음성가를 부르는 것을 원하던 청년들과 주일 대예배에는 기타와 복음성가를 절대 금지하는 장로들과의 다툼이었습니다. 청년들은 강행을 했고, 장로들은 복음 성가와 기타를 친 청년들을 교회에서 출교시켰습니다. 장로들은 시대의 음악이 발전하고 변해가는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교회가 복음 성가와 기타를 사용하여 주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4. 문화/문명을 악하게 사용하는 자들은 언제나 존재합니다.
4.1) 라멕은 하나님이 만드신 혼인문화를 깨뜨렸습니다.
창세기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라멕은 “라멕이 두 아내를 맞이하였습니다(창4:19)”
라멕은 한 여자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루지 않고, 두 여자를 자신의 아내로 삼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원하는 바를 따라 누구하고도 결혼을 하는 나쁜 문화가 이제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시간이 흘러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셋의 후손들도 이 문화에 물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노아 시대에는 자기가 원하는 자들과 결혼을 하는 문화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되어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정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으로 사는 가족은 이제 오직 노아의 가족만 남았습니다. 그리고 노아 가족만이 홍수 심판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강조하여 말씀드리자면, 우리교회 청년들이 경건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래야 경건한 신앙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들은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4.2) 자신의 욕망을 위해 문화/문명을 악용하는 대표자는 라멕입니다.
창세기 4:23-24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로다 하였더라.
라멕은 자신의 후손이 만든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을 다치게 한 소년을 죽여 보복을 합니다. 그가 정말로 악한 것은 보복으로 살인을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살인을 하나님의 말씀을 악용하여 자랑하듯 노래를 하기 때문입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로다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보호하는 표를 주신 것은 가인이 보복을 받아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라멕은 하나님의 자비를 악용하여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고, 자신에게 보복하는 자에게 더 심한 보복할 것이라 협박을 하였습니다. 라멕은 충분히 강력한 자신의 힘을 가지고 있었기에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며 자랑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자가 인간의 도성에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4.3)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교회 식구들은 자신이 속한 문화/문명에 경각심을 가지고 그것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합니다.
가인의 후예들이 자신들을 위한 성을 쌓고 문화/문명을 발전시켜, 자신들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반면에 셋의 후손들은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세기 4:26).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한 문화/문명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며 여호와의 이름을 세상 가운데서 불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표현은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가 하나님이심을 공개적으로 말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셋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그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낸 문화는 없었지만, 실제적인 만족감을 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첨단 문화/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21세기는 가인이 자신을 위한 성을 쌓았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하고 기술이 발전한 시대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집에서 모든 것이 가능한 시대입니다. 심지어 잔디 깎는 로봇이 있어서 시간을 맞추어 놓으면 자동으로 잔디를 깎고 돌아와서 스스로 충전기에 들어가 충전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편리함을 추구하는 문화/문명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문화/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시대가 주는 편리한 문화/문명에 물들게 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5. 마지막으로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도성에서 살고 있는지를 점검하겠습니다.
- 나는 가인처럼 자신만을 위한 성을 쌓는 자입니까? 아니면 자신을 위한 도성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제단을 쌓는 자입니까?
- 내가 오늘날 가장 의지하고 나의 안정을 보장하는 나만의 성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니면 은행 계좌에 있는 현금이나 연금입니까?
- 내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문화/문명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아니면 자기 만족과 자기 편함을 위한 것이었습니까?
사람은 자기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통해 도성을 세울 수 있습니다. 문화/문명도 만들어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배제한 가치관을 가지고 세우는 인간의 도성은 결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인간이 세운 도성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도성(나라)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성에서 사는 자로서 모든 문화/문명을 잘 이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하나님의 도성의 백성됨을 세상에 증명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