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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5:1-5, 21-27
제목: 성경의 족보가 주는 의미를 알자

창세기 5:1-5
이것은 아담의 계보(족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 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 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21-27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 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백 팔십 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칠백 팔십 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창세기 5장의 족보를 역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를 당황하게 만드는 구간이 있습니다. 바로 족보입니다. “누가 누구를 낳고………..살다가 죽었더라"라는 반복되는 패턴은 지루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때로는 읽지 않고 건너 뛰거나, 눈으로 대충 훑어 보고 넘어가곤 합니다. 또한 족보에 나오는 이름의 발음이 어려워 족보를 정독하기 어렵게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족보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 계획과 인류를 향한 메시지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세기와 누가복음의 족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 족보는 실제 역사라는 증거입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그 사건이 실제 역사였음을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족보 다음에 나오는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했던 역사였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창세기 5장은 “이것은 아담의 계보라(족보라)” 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아담은 실제 인물이며, 그 후손들도 실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과 죽음도 실제 사건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사건은 단순한 이야기나 신화가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 인물을 통해 이루신 역사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창세기 6장의 노아의 홍수도 마찬가지입니다. 
6:9절에 “이것이 노아의 계보(족보)니라”는 말이 나오고, 노아와 가족만이 홍수로 구원을 받는 사건이 기술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홍수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을 하지만, 노아의 족보 이야기에 포함된 노아의 홍수는 실제 있었던 일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5장의 아담의 족보는 아담의 가족이 하나님의 형상임을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5:1-5
이것은 아담의 계보(족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 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 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5장 1-5절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인 아담은 자신의 형상대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말씀에서 성경 독자들에게 아주 중요한 진리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비록 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형상됨을 끊어지지 않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아담의 아들 셋에게 그리고 셋의 후손들에게 이어졌습니다.

반면에 4:16-24절의 가인의 후손에 대한 기록에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심지어 가인의 후손들은 아담이 그들의 조상인 것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다시말해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은 역사 속에 잠시 있다 사라지는 아침 안개와 같음을 알려 줍니다.

물론 혈통적인 것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언급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4:26절에서 보았다시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혈통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실제로 셋의 외모는 아담을 닮았을 것입니다. 물로 가인도 아담을 닮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한 자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5장의 족보는 인간의 현실 - 죄와 죽음을 보여줍니다.

창세기 5장을 읽으면, 두 가지 특징이 반복됩니다. 
첫째는 사람들이 수 백년을 살았습니다.
두번째는 그러나 결국 모두 죽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간략한 결론은 사람이 아무리 오래 살아도 죄로 인해 결국은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5장의 족보에 대한 두 가지 특징을 좀 더 자세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사람들이 수백 년을 살았다고 기술하는 내용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먼저 분명하게 구분해야 하는 것은 지금의 설교가 연대기적인 분별을 위한 연구나 긴 수명과 환경과의 관계성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홍수 이전의 시대의 시간의 계산이 지금하고 똑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또한 당시의 기후나 환경이 지금보다 더 좋아서 사람의 수명이 길었다는 주장이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왜 그리 오래 살게 된 것일까?"에 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1:27-28에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시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에 필요한 것이 긴 수명이었습니다. 인간이 비록 타락하였을지라도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긴 수명을 주사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신 것입니다. 
창조 후 정말로 오랫동안 지면에 소수의 사람만이 존재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지면에 사람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사람이 오랫동안 살며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건강하게 하는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두번째입니다.
모든 사람은 정말로 오래 살았지만, 결국은 모두 죽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이었습니다. 아무리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있더라도 죽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건강한 몸을 가진 것으로 인해 그들에게 죽음은 아주 먼 미래의 것으로 생각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은 죽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사망은 죄인된 인간에게 정말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그들 위에서 왕노릇 하였습니다. 이 사망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전까지 왕 노릇하였습니다. 
정리를 하면, 인류의 조상이신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온 인류에게 죄가 들어와 사망이 모든 사람 위에서 왕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외없이 모든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로마서 5:17-19은 창세기 5장의 족보에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 받아 건강한 몸으로 오래 살았음에도 결국 죽은 이유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4. 5장의 족보에는 죽음이 왕 노릇하는 세상에 죽음을 이기는 길을 보여줍니다.

족보는 죽은 자들의 기록입니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이 다르게 기록됩니다.

창세기 5:21-27
에녹은 육십 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 육십 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므두셀라는 백 팔십 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칠백 팔십 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는 구백 육십 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4.1) 아담의 족보는 죽음의 행진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그 죽음의 행진이 에녹에 이르러서는 멈추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통해 죄 아래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죄인된 사람들에게 걸어가야 할 길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녹의 하나님의 동행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그가 했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다른 사람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장소와 생활을 통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는 삶속에서의 동행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상의 겉모습은 같지만, 그의 마음과 태도는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그는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식을 찾아 일상을 영위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의 삶입니다.
현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엄청나게 위대한 일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치 기독교를 박해하는 곳에 선교사로 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진짜 삶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동행은 특별한 일을 통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에녹의 하나님과 동행은 하나님을 자신의 모든 일상의 영역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고 산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동행을 거창한 것으로 간주하지 마시고, 매 순간에 최고의 자리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내주하사 언제나 우리 모든 신자들과 함께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선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을 하던지 아니면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양자택일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성령의 뜻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4.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은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자신과 동행한 에녹에게 죽음을 기각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의 후손인 에녹은 죄로 인해 내려진 사망의 판결을 하나님께로부터 면제받은 사람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사망의 판결을 거두셨기 때문입니다. 에녹은 죽음이 지배하는 시대에서 죽음을 이기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의 삶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삶이었다고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올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과 동행을 하며 말씀을 전하였던 북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에 올리어졌습니다. 

열왕기하 2:11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라는 이름을 가지신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에 대하여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뿐아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죽음이 아닌 영원한 생명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5. 족보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3장의 족보를 통해 창세기 5장의 족보를 거꾸로 올라갈 때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의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께 도달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3:23,38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에노스요 그 위는 셋이요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

창세기 5:1-3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아담은 백 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계획을 수 없이 많은 세대가 지나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이어왔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전 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을 준비하시며, 죄로 인해 왜곡된 인간들을 오래 참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푸신 은혜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인간의 추악한 모습으로 인해 수많은 재앙과 질병과 전쟁과 죽음이 있음에도,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며 인간을 사랑하시는 것을 멈추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국 창세기 5장의 족보와 누가복음 3장의 족보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제로 성취하신 구원)을 보여주는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6. 결론과 권고입니다.

성경의 족보는 결코 지루한 것이 아닙니다. 
첫째로 성경은 족보를 통해 우리에게 하나님은 실제 역사 속에서 일하시고 계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두번째로 하나님의 형상이 끊이지 않고,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졌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바로 족보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세번째로 족보에 나오는 죽음의 기록은 인간이 죄로 인해 사망의 권세 아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네번째는 그러나 하나님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내버려 두지 않고,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하시고 보내신 것을 족보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족보의 이름들 중에 특별한 언급이 나온 사람들은 아주 중요한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족보에 특별한 언급이 있는 인물들을 더 세심하게 읽으시면 신앙에 많은 유익이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우리 교회 성도들은 족보를 읽으실 때마다 족보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은혜라는 보물을 발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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