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12.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4:25-26
제목: 셋의 출생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창세기 4:25-26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장의 시작은 비극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형제였던 가인과 아벨 사이에 살인이 일어났습니다. 죄가 세상을 덮쳤고, 아벨은 죽었으며,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만의 성을 쌓았습니다. 가인의 후예들은 문명을 일으키고 힘을 가졌지만, 그들의 입술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 대신 복수와 교만의 노래(라멕의 노래)가 흘러나왔습니다.
세상은 마치 하나님을 잊은 듯 보였고, 거룩한 계보는 아벨의 죽음으로 끊어진 것처럼 보였습니다.
바로 그때 오늘의 말씀인 반전의 서막을 알리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다 없어졌다고 생각한 순간,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 대신 다른 후손 셋을 보내주셨습니다.
1. 창세기 4장은 세상에 존재하는 두 흐름을 잘 대표하여 보여 줍니다.
1.1) 가인과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 중심이 아닌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세상적인 흐름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살기 원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말은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자신만을 위하여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자신들의 노력으로 성을 쌓고, 자신들을 위한 문화/문명을 발전시킵니다. 이 흐름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하여 줍니다.
1.2) 셋의 후손을 통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흐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이 죽은 후에 하와에게 다른 후손 셋을 보내 주십니다. 셋의 후손은 에노스 때부터 하나님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는 예배를 드립니다. 자신만을 위해 사는 자들의 세상 흐름과는 정반대의 흐름입니다. 이 흐름은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자들의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2. 구속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주도적인 흐름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2.1) 아담과 하와는 약속의 상실로 인한 고통 중에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경건한 아들 아벨이 죽임을 당했고,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가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로서 확실하게 그들의 문화/문명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정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아담과 하와는 엄청난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2.2) 그러나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고통 속에 홀로 남겨 두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아벨이 죽은 후에 하와에게 다른 씨(후손) 셋을 주셨습니다. 셋은 아담과 하와에게 단순한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셋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대하게 하는 소망의 아들입니다.
여기서 다른 씨란? 하나님께서 3:15절에서 하와에게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을 이어지게 하는 자손이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셋의 아들 에노스 때부터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즉, 공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린 것입니다. 이제 암흑과 같은 인간 역사의 흐름 한 가운데 다시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세워졌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섬기는 동지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2.3) 하와는 셋이 출생했을 때 하나님의 구속의 약속이 여전히 진행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1절의 가인이 출생할 때의 고백과 4:25절의 셋이 출생할 때의 고백을 비교하면 하와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4:1절에서 하와는 가인을 낳은 후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그 남자를 얻었다”라고 고백합니다.
4:25절에서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후손을 주셨다”라고 하나님을 주어로 한 고백을 합니다.
1절은 ”내가 ..... 얻었다“입니다. 내가 주체가 되고 여호와가 도움을 주어 약속을 성취하는 아들을 내가 얻었다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급한 판단이었습니다. 가인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후손이 아니었고, 여호와의 정하신 시기의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반면에 25절은 주어가 하와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 다른 씨를 주셨다“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을 주어로 사용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다른 씨를 주셨다 고백한 것입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구원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게 진전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 하나님의 약속은 셋의 아들 에노스를 통해 이어가고 있습니다.
창세기 4: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3.1) 셋에서 에노스로 이어지는 것은 단순한 족보가 아닙니다.
하와는 셋을 낳았을 때, 셋은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어가도록 하는 다른 씨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셋이 어떤 특별한 것을 행하였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셋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갈 후손이라는 증거는 그가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시대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예배할 때 드러났습니다.
3.2) 셋은 아들에게 '에노스'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을 소망하고 있었습니다.
셋은 아들의 이름을 통해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내 이름이 다른 사람에게 불리고 있습니까? 특히, 미국 사람들은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 에노스라는 이름은 더 자주 그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입니다. 에노스란 '연약한 인간(사람)',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셋은 이런 의도를 가지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에노스라는 이름이 불릴 때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인간인지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셋의 의도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에노스가 살았던 시기에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3.3) 하나님은 언제나 연약한 사람에게 강한 힘이 되심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 하는 가인의 후손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하지만, 셋의 신앙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셋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분명하게 고백하고, 하나님이 필요함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셋의 신앙 고백을 통해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믿음을 대표하는 사람들에게 있는 공통점은 연약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75세에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믿는 자들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영향력 없는 작은 가족의 막내로 목동이었을 때, 하나님은 어린 목동을 불러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믿음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키가 작고 말이 어눌하고 눈병이 있었습니다. 어느 사도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으며, 가장 많은 교회를 세웠으며, 성경 말씀을 기록하였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자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개인 중심적인 현시대에 신자들은 더욱 더 명심해야 할 진리입니다.
3.4)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은 개인적인 예배입니다. 하지만, 에노스 때에 가인의 후손들의 문화 속에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공개적으로 불렀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말은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이 자신들의 주님이심을 선포하며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특별히 히브리어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인격적 관계를 갖고 있음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인격적인 관계성이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다시말해 자신들을 높이며 살고 있는 가인의 후손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틀렸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3.5)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람들은 누구일까?
단순히 혈통적으로 셋의 후손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인의 후손들 중에도 자신이 연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람들을 포함합니다. 비록 그들이 육신으로는 가인의 후손이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 중심의 가치관을 가진 사회 속에 자신을 돌아보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지를 깨닫게 해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이제 사람들 앞에서 여호와가 나의 하나님이라 공개적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셋의 아들, 에노스의 이름을 통해 전했던 메시지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로 열매 맺은 것입니다.
3.6) 여담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말씀에 대한 잘못된 유대인의 해석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성경의 해석을 편견 없이 듣는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유대인의 잘못된 해석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때부터 인간이 타락을 하여 노아의 홍수 심판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렇게 잘못된 해석을 하는 이유는 출애굽기 20:7절의 말씀을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세상의 많은 이단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해석하고, 이것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것의 중요성이 여기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의 조상들로서 그들은 공개적으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4. 마지막으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은 진실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인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4.1) 단순히 교회를 다니며 교회 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부르는 사람으로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지금 여러분들이 가인의 후손들처럼 자신을 위한 명예와 권력과 물질로 성을 쌓고 있다면, 하나님을 주님으로 부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유명한 대형 교회에 출석하여 많은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신자라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사업을 위해 또는 선거에서 교인들의 표를 얻기 위해 큰 교회에 얼마든지 출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젊은 청년들은 좋은 결혼 상대를 찾기 위해 큰 교회 출석을 하기도 합니다.
4.2) 현대의 시대에 하나님을 진실로 부르는 자들은 다음과 같은 고백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먼저 자신에 대하여 나는 연약한 자이며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임을 인정하며 고백한 적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나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있음을 알고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고백이 있는 사람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고백을 한 사람들만이 온전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있습니다.
저는 대학 시절 C.C.C 선교 단체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제가 1학년 때 우리 선교 단체의 부대표가 계셨는데, 그분의 신앙 활동이 너무나 좋고 멋져 보였습니다. 저는 그 분을 존경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이 인도하는 모임에 빠지지 않고 참석을 하려고 노력을 하였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5년쯤 흘러서 우연히 그분의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신앙을 포기하고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선교 단체의 신앙훈련이 잘못되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으로 나의 구세주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함이 없이 선교 단체에서 그저 열심히 활동했을 뿐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믿음에 대한 점검이 없이 신앙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자들은 스스로가 만든 착각 속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어느 순간이 오면, 신앙이라 여겼던 허상이 산산히 깨어져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마지막 선택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을 위한 성을 쌓는 삶을 살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자 한다면, 먼저 우리 자신이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확실히 고백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이는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을 공개적으로 선포하는 예배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검을 통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