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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6:1–8, 로마서 5:20
제목: 타락의 확산과 하나님의 은혜

창세기 6:1-8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로마서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보면 점점 더 혼란스럽고, 가치가 무너지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조차 흐려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말합니다. 이런 시대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인 노아 홍수 직전의 세상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셨던 그 세상이 이제는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죄가 넘치는 곳에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더욱 넘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유일한 소망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1. 신앙의 경계가 무너질 때 타락이 시작됩니다 (1–2절)

창세기 6: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1.1)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누구와 결혼했느냐보다, 왜 그렇게 결혼했느냐입니다.
이전까지는 경건한 후손들은 하나님 중심으로 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여 살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외적인 미를 기준으로 하며, 자신의 욕망을 중심으로 하는 삶의 가치관을 가진 자들도 신앙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게 하는 혼인을 하였습니다.

1.2) 하나님의 아들들은 사람의 딸들의 외모를 “보고 → 좋아하고 → 취했(결혼했)습니다”
이들의 결혼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성경 독자들이 분명하게 알 수 있도록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에 사용된 언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창세기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였으며, 에덴 동산에서 추방을 당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경계를 넘어서는 결혼으로 인해 일어날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 사람의 죄악이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범죄한 인간들을 이 세상에서 추방하십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의 행동의 유형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경건한 신자들도 하나님이 정하신 경계를 넘어서는 행동을 통해 올바른 신앙이 언제든지 무너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결혼은 신중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중심이 되는 신앙을 가진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1.3) 신앙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결혼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노아 시대의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과의 결혼은 그들의 후세대의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경건한 신자가 자신이 지켜야 할 경건한 기준을 포기하고 외적인 기준으로 결혼을 한다면, 그 가족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 공동체로 세대를 이어가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서 기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자녀들을 위한 신앙교육이 어렵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른 신앙을 가진 자와의 결혼은 그들의 다음 세대인 자녀들의 신앙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노아 시대의 신앙 공동체와 불신자들의 사회 공동체 간 구별이 없어지게 된 원인입니다.

2. 하나님은 타락을 그냥 두지 않으신다 (3절)

창세기 6: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2.1) 3절에서 하나님이 선언하십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먼저 “나의 영”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생명의 기운 또는 하나님의 숨(루아흐)입니다. 이 단어가 주고자 하는 의도는 인간의 수명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 질서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5장에 사람들은 수백년을 장수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함으로써 그들이 그렇게 오래 살았음을 알려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죄악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지 않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지 않음으로 그들은 더 이상 강건하게 오래 사는 삶이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2.2)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육신이 되다”는 말은 하나님의 영이 머물러야 할 인간이 오직 본능과 욕망 중심적인 존재로 전락했다는 뜻입니다.
육신이라는 단어가 정확히 죄와 동의어는 아니지만, 영적인이라는 말과는 반대적인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영이신데, 인간이 육신적인 존재가 되었으니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3) 사람의 수명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줄어든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들의 죄로 인해 육적인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심판의 결과로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대 근동의 설화에는 홍수에 대한 심판과 인간 수명이 줄어든 이유를 단지 신의 심술에 의한 것이라 합니다. 간략하게 말씀 드리면, 길가메쉬 서사시에서 홍수는 인간이 너무 많아 소음 공해로 인해 신이 잠을 잘 수 없었기에 인간을 죽이는 홍수를 보낸 것이라 말합니다. 아트라하시스 설화에서는 인간의 수명이 너무 길면 인간이 너무 많아질 수 있으므로 인간 수명을 제한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유튜브에 주장하는 것처럼 성경의 홍수와 인간의 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고대 근동 설화에 기원을 둔 이야기라는 것은 너무나 잘못된 주장입니다. 실제로 홍수가 있었는데 고대 근동에서는 신들의 심술에 의해 이러난 것이라 해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노아 시대의 인간 사회에 죄가 만연하게 되었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심판을 받아 사람의 수명이 대폭 줄어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심하십시요. 하나님은 죄를 오래 참아주시지만, 결단코 죄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지었다든지,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가 죄를 짓고 있다면, 속히 죄를 회개하도록 해야 합니다.

3. 노아 시대의 타락한 사회의 특징과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창세기 6:4-5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3.1) 본문에 등장하는 두 종류의 사람은 당시 사회의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첫번째가 네피림이고 두번째가 용사들입니다. 
오늘날의 언어로 바꾸면, 힘과 권력이 최고로 강한 자가 살아남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첫번째, 네피림은 거인으로 힘과 폭력으로 움직이는 사회의 대표자입니다. 이들은 홍수 심판 때에 다 죽었습니다. 하지만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였을 때 비슷한 종족을 마주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을 본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을 도전히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좌절을 합니다. 그 만큼 네피림이라는 존재는 육체의 강력한 힘과 폭력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민수기 13:33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두번째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 태어난 용사들입니다. 용사란 무엇입니까? 결국 잘 싸우는 자란 말입니다. 용사로 이름을 날리는 사회는 지속적인 전쟁과 폭력이 있는 사회입니다. 이 사회는 평화와 안정은 없었던 것입니다. 

3.2) 이런 사회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창세기 6:5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다”

그들의 죄 문제는 그들의 폭력적인 행동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마음 자체가 악으로 가득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마음이란 한 사람의 인격의 자리입니다. 모든 것을 마음에서 생각하고 계획을 합니다. 문제는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다른 사람을 해칠 계획뿐이었습니다. 마치 사기꾼이 만나는 모든 사람을 평가하여 얼마나 이 사람을 속여 돈을 뜯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과 같습니다.
5절의 말씀은 사람이 얼마나 죄로 인해 부패되었는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다” 하나님을 당시의 사람들을 평가하셨습니다. 이제 이 악한 세대에게 남은 것은 그들 자신들의 악에 대한 정당한 댓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들에게 악에 대한 정당한 심판을 집행하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한탄하시며 근심하십니다.

창세기 6:5-7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4.1) 본문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6절)"라고 표현은 어떤 잘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죄에 대한 깊은 슬픔과 아픔에 대한 표현입니다. 
이렇게 표현한 이유는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은 사람의 죄에 대하여 절대적인 삼자처럼 무관심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심을 알려 주고자 하는 표현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한다면, 하나님의 고통은 하나님의 성품에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죄를 끊임없이 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를 제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 죄를 제거할 것인데, 이 심판은 죄를 생산해내는 사람들 위에 내려질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슬픔과 아픔입니다. 

4.2) 한가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격언을 교정하겠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은 죄를 생산하는 공장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죄는 분리하여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사과 나무가 사과를 열매 맺는 것과 같이 죄인은 죄를 짓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죄를 짓는 악인을 미워하십니다(시5:5) 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짓는 악인을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성품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
다른 면에서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죄인된 사람들을 구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도록 하신 것입니다. 어떤 죄인이든지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인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자신들의 죄를 씻고 거듭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4.3) 인간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은 큰 심판을 결정하셨다.(7절)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지만 죄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제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라고 심판 선언을 하셨습니다.
“쓸어버리겠다”는 창조 순서를 되감기하는 것과 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제거하겠다는 것입니다.  
제일 나중에 창조된 사람부터 시작하여 짐승, 기는 것, 공중의 새 순서로, 즉 창조 순서와 역순으로 그 모든 것들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 하시는 것입니다. 이유는 인간의 죄가 세상에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하는 관리자입니다. 하나님의 관리자인 인간의 죄는 그 관리자 아래 있는 모든 것들에게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이 심판 받을 때에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5.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전에 먼저 은혜를 주십니다.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5.1) 절망적인 심판의 선언 끝에 반전의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모두가 죄를 짓고, 모두가 심판의 대상이 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라는 단어로 소망의 문을 열고 있습니다.
노아가 완벽했기 때문에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노아도 그 시대의 흐름 속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격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노아와 그 가족은 구원을 받았고, 하나님의 구원이 지속되어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5.2) 모든 역사의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 전환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심판을 받았을 때,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마귀의 머리를 깨부수고 최후 승리를 얻을 것이라는 복음을 주셨습니다(창3:15)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의 후손들은 자신들을 위한 성을 쌓고 문화와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라멕은 두 명의 부인을 얻었으며, 자신의 살인을 정당화하며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보호의 약속을 조롱하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셋을 주시고 그의 후손들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의 공동체를 만들어 주셨습니다(창4:25-26)

창세기 5장에서 셋의 후손들의 죽음의 행진 속에서 에녹을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죽음을 이길 수 있음을 알려 주셨습니다(창5:24)

창세기 6장에서 경건한 후손과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 혼인을 통해 경계가 사라지고, 지면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죄악에 빠졌을 때도 하나님은 노아에게 은혜를 주사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여 구원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6:8)

창세기 12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이 넘쳐나는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셔서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은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음을 선포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롬5:20)”

그러므로 은혜는 자격이 아닙니다. 창6:9절의 노아가 당대에 의인이요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그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자들만이 세상에 구원의 소망이되는 길을 보여주는 자들이 될 수 있습니다.

6.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6:1-8절의 말씀은 인간 사회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심판을 결심하셨다는 단순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여전히 타락했고 사람의 마음은 여전히 악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아무리 타락하더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 받을 사람을 선택하사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성취하십니다. 감사하옵게도 하나님은 지금도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더욱 감사하옵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리하여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드러내며 살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겠습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대신에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를 붙드시고, 은혜를 입은 사람답게 노아처럼 의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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