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0.2026.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창세기 7:1-12,16-17, 마태복음 24:38-39, 44
제목: 홍수 심판과 노아
창세기 7:1-12,16-17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생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 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마태복음 24:38-39, 44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서론: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눈 앞에 와 있습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은 심판의 날이 이제 눈 앞에 이른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을 위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며 평범한 일상의 살고 있었습니다. 산위에서 100년 동안 방주를 짓고 있는 노아의 모습은 그들에게 더 이상 경고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이상한 사람이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하나님은 노아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그리고 7일 후, 심판은 시작됩니다. 방주의 문이 닫히면 더 이상 기회는 없습니다.
1. 노아는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하였습니다.
창세기 7:1,6-12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1.1) 노아와 그의 가족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방주를 만들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순종했습니다.
그날은 비가 오지 않는 밝은 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라” 하셨습니다. 노아는 즉시로 방주에 들어갔습니다.
노아의 즉각적인 순종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하는 순서가 있습니다.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이 은혜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받았기 때문에 의로운 삶을 살며,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당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커다란 배를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노아는 순종을 하였던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을 하여 방주에 들어간 것입니다.
1.2) 노아의 순종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순종이 없습니다. 말씀을 읽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더욱 문제는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전도 집회를 가지고 한 가지 예를 들겠습니다. 전도 집회는 감동적인 찬양과 많은 사람들의 통성 기도 그리고 설교자의 호소력 있는 설교가 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에 예수가 구세주 이심을 전합니다. 그후에 예수를 영접하고자 하는 분들은 앞으로 나오게 초청을 하여 예수님을 영접하게 합니다. 그러나 1년 후의 통계에서는 교회에 정규적으로 출석하는 비율은 6%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몇년 후에는 그 출석한 6% 중에서 다시 10-15%만이 교회에 출석을 하였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을 하였지만, 하나님께 예배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은혜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노아처럼 순종함으로 배를 100년간 건설하는 자가 됩니다. 진정으로 은혜받은 성도는 언제나 말씀을 읽고 순종합니다. 순종은 은혜받은 표지입니다.
2. 하나님은 노아의 의로움을 보셨습니다.
창세기 7:1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2.1) 하나님이 노아에게서 의로움을 “보셨다"를 "발견하셨다”로 해석하면, 노아가 구원을 받은 것은 그의 행위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이 됩니다. 그 해석은 우리 기독교의 진리를 완전히 왜곡하게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노아가 의인으로서 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노아에게 먼저 찾아 오셔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은혜받은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다 준행하는 의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순종의 결과로 노아의 의로움을 하나님께서 보시고(발견하시고) 구원을 베푸신 것이 아닙니다.
2.2) 정확한 해석은 ”하나님이 보셨다“를 ”선택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1에서 사무엘 선지자에게 사울 대신 다윗을 이스라엘에 왕으로 삼으시라는 명령을 하실 때, 여호와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이는 내가 그의 아들 중에서 한 왕을 보았느니라“라는 동일한 단어를 사용합니다. 의미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다윗 왕을 ”선택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7장 1절의 말씀에서도 같은 단어이므로 “보셨다”를 “선택하셨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악한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우므로 내가 너를 선택하였음이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신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부패함과 대조되는 의를 드러내고자 하신 목적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인이 된 것입니다.
3. 노아의 가족 구성원에 대한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노아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은 의인이며, 당대에 완전한 자였습니다. 그의 삶은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당연히 당시의 사람들과 구별되는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독자들 중 누구도 노아의 구원에 대해 불평이 없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부인이나, 세 아들이나, 세 명의 며느리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이 노아의 가족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들도 의로움을 가졌기 때문인지 의구심이 듭니다.
3.1) 노아의 가족이 구원받은 궁극적인 이유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죄악의 세상에서 구원하는 인류의 대표, 즉 언약적 머리로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6:18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노아의 가족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 안에서 노아를 통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대표로 세워 그 가정이나 공동체를 구원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언약의 대표성이라는 용어가 이를 잘 설명해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요한 언약을 세우실 때, 그 공동체의 대표와 언약을 세우십니다. 예를 들어, 첫 아담은 전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하였습니다. 아담은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죄인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구원의 대표로서 모든 사람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믿는 모든 사람이 예수 안에서 의인이 되었으며,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노아의 가족들은 노아를 대표로 하는 언약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3.2) 그러나 가족 단위의 구원 원리와 개인의 구원에 대한 이해를 조화시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분명한 것은 믿는 가정에서 태어났을 지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노아는 언약의 대표로서 가족을 홍수 심판에서 구원하였습니다. 하지만, 노아의 후손인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게 됩니다.
애굽에서 구원을 받은 첫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 약속의 땅에 들어간 사람은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개인이 실제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방주에 걸어가 들어가는 자만이 구원을 받습니다.
예로 롯의 아내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는 중에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을 그 성읍에서 강권하여 끌어내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아내는 그 성읍을 잊지 못해 뒤돌아 봄으로써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현시대의 그리스도인 가정에 누군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을 때, 그 가족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게 구원의 기회가 더 가까이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 개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원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사도행전 16장의 간수 가족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16:31절에서 바울은 분명하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습니다. 그후에 바울은 32절에서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33절에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었다는 것을 증거로 모두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간수의 가족이 간수 한 사람으로 시작하여 온 가족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가족 구원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한 이유는 부모의 믿음이 자녀들에게 구원의 큰 기회를 주지만, 반드시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3.3) 인지 능력이 없는 유아들의 구원에 대한 것입니다.
지금은 의료시설과 의학이 발달하고 위생관리를 잘 하기 때문에 유아가 죽는 경우는 드문 일입니다. 하지만 예전에는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죽는 일이 많았습니다.
17세기 영국의 청교도였던 존 오웬은 옥스퍼드 대학교의 부총장을 역임했으며, 올리버 크롬웰의 고문이자 설교자였습니다. 그에게는 11명의 자녀가 태어났습니다. 그러나 단 한명도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남은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에게 반복되는 자녀의 죽음은 깊은 상실을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신학자이며 설교자로서 유아의 죽음과 구원에 대한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알려 주어야 했습니다.
첫째로, 오웬은 생명과 죽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으로 우연이 아님을 분명하게 하였습니다. 그는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신앙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두번째로, 유아들이 죽은 경우 구원의 문제에 대하여는 언약적 관계를 가지고 신중하게 다루었습니다. 일단은 믿는 부모의 모든 자녀들이 확정적으로 구원을 받는다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언약 안에 있는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소망을 두었습니다.
세번째로, 지금까지 아담의 원죄로 인해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었다는 말을 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유아는 모두 다 죄인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오는 선택에 의해서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유아로 죽은 사람이 구원을 받았는지에 대한 확정적인 대답을 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 믿음의 부모들에게 태어난 후 일찍 죽은 아이들에게 하나님은 언약적 가족에게 더 크신 긍휼을 보이실 것이라는 소망 가운데 그들이 구원을 받았을 것이라는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불신자 가정의 어린 아이에게도 그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믿는 부모의 가정이 더 큰 소망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자신의 뜻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구원 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지어 북이스라엘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한 여로보암왕의 아들 아비야에게조차도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아비야는 병들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죽을 때, 그의 마음에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선한 뜻을 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그만 온전히 묘실에 장사되도록 하셨습니다. (왕상14:13) 당시 묘실에 온전하게 장사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으로 올바르게 살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4. 노아와 그의 가족과 그리고 동물들이 방주에 들어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방주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비를 40일간 내렸습니다.
창세기 7:16-17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 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방주에 들어가는 준비기간은 7일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는 40일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에 들어가 생명을 보존해야 하는 동물들을 보냈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은 차례로 방주 안으로 동물들을 들여 보냈습니다. 그 기간이 7일입니다.
7일간 많은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이 왔습니다. 엄청난 광경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을 것입니다. 이제는 심판이 정말로 눈 앞에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노아가 전하는 하나님의 심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과 동물들이 방주에 모두 들어간 순간 하나님이 방주의 문을 직접 닫았습니다. 구원의 문이 쾅하고 닫혔습니다. 하나님이 닫으신 문은 어느 누구도 열고 방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구원의 기회가 끝났습니다.
명심하십시요.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임합니다. 하나님이 심판이 임하기 전까지만 기회가 있습니다.
5. 결론입니다.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은 과거의 실제 사건이지만, 동시에 다가올 더 큰 심판의 예표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37)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 가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은 때에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주님이 오신 후에는 더 이상 구원의 기회는 없을 것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힐 때, 밖에 있는 사람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구원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죄를 하나님께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후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구원의 문이 아직 열려 있는 이때에 구원의 복되고 긴급한 소식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