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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26 주일 예배.
예수님의 거룩
본문: 누가복음 5:12–16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누가복음 5장 1–11절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고, 놀라운 양의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말했습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았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죄인 됨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또 한 사람이 예수님 앞에 엎드립니다. 바로 나병환자입니다. 그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부정한 것을 멀리하시는 분이 아니라, 부정한 것을 정결하게 하시는 거룩한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와 부정을 어떻게 깨끗하게 하시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나병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병만이 아니었습니다.
누가복음5: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성경에서 말하는 나병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한센병과 정확히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여러 피부 질환과 피부의 비정상적인 상태를 포함하는 넓은 개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피부에 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부정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에 있었습니다.
레위기 13:45–46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이것은 단순한 치료를 위한 격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공동체에서 분리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상적인 예배의 자리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공동체에 속한다는 것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사회적인 고립과 영적인 소외를 경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예수님께 한 말이 중요합니다. 그는 “주님, 제 병을 고쳐 주십시오.” 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육체의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나를 다시 깨끗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다시 공동체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것이 그의 간구였습니다.
2. 성경에서 부정하다는 것은 반드시 죄를 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을 하나 구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부정하다’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죄를 지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여인이 생리하는 것도 부정한 상태로 규정되었지만,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시체를 만지는 것도 부정하게 만들 수 있지만, 장례를 치르는 것이 죄는 아닙니다. 따라서 나병환자가 부정하다는 것은 그가 다른 사람보다 더 악한 죄인이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의 정결법에서 부정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예배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죽음과 부패, 피의 유출, 심각한 피부 질환과 같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생명의 온전함과 대조되는 상태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부정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일정 기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예배의 자리에서 제한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의 죄에 대한 중요한 그림을 볼 수 있습니다. 죄는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설 수 없습니다. 나병환자가 진영 밖에 있었던 것처럼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힘으로 설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람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3. 예수님의 거룩은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누가복음 5:13절입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그를 만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만 하셔도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셨습니다.
왜 이것이 놀라운 일입니까? 당시 사람들은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자신도 부정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그를 만지셨으니 예수님도 부정하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부정하게 된 것이 아니라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병이 곧 떠나니라.” 이것이 예수님의 거룩입니다.  
우리의 거룩은 부정한 것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거룩은 부정한 것을 만나면 그것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부정함이 예수님께 전염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이 그 사람에게 임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선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
4. 율법은 부정을 보여 주지만 예수님은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레위기 13장은 나병을 판별하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레위기 14장은 나병환자가 깨끗하게 된 후 공동체로 돌아오는 절차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율법이 그 사람의 병을 치료한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부정한 상태를 판별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깨끗하게 만든 것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이것은 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보여 줍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가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나병환자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보여 주기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제거하시고 깨끗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잠시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오늘날 한센병은 치료할 수 있는 질병입니다. 그리고 일상적인 짧은 접촉이나 악수 같은 것으로 쉽게 전염되는 질병도 아닙니다. 
제가 속했던 선교단체에서는 대학 4학년이 시작되는 봄방학에 리더들을 소록도로 보내 봉사활동을 하도록 했습니다. 제가 4학년이 되었을 때는 그 봉사활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먼저 다녀온 선배들의 간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2박 3일 동안 봉사하고 돌아온 선배들은 여러 가지 신앙적인 도전을 받았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전염될 위험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환자들과 함께 식사하려고 하니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잠자리도 조심스럽고, 문손잡이를 잡을 때도 멈칫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다른 놀라운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소록도에 거주하시는 분들 가운데 성경을 열심히 읽고 암송하는 분들이 많았고, 신약성경 전체를 암송하시는 분들도 계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신구약 성경 전체를 암송하시는 분들도 있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또 가족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외적인 모습 때문에 그들을 두려워하고 거리감을 느꼈지만, 함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가운데 그들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한 사람의 영혼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몸은 나병으로 정상적이지 않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정결하고 의로운 자들로 있었던 것입니다.
5. 십자가에서 우리의 정결이 완성되었습니다
나병환자의 육체적인 회복은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궁극적인 구원의 그림자였습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육체의 질병에서만 깨끗하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린도후서 5:21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의 죄가 예수님께 전가되고, 예수님의 의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는 근거는 우리의 의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우리는 깨끗해진 후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운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6. 그러면 기독교의 은혜란 어떤것인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그에게 특별한 공로가 있었습니까? 그가 선한 일을 많이 했습니까? 그가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아갔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할 뿐입니다.
7. 깨끗하게 된 사람은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중요한 적용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 깨끗함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오늘 우리 주변에도 우리가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가 복잡한 사람도 있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저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나병환자를 밀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를 죄라고 부르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죄를 용납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죄인에게 복음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교회는 죄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된 죄인들이 모이는 공동체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올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편견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오는 길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람의 부정함을 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깨끗하게 하실 수 있는 예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한 문장으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거룩은 부정한 것에 의해 더럽혀질 수 있지만, 예수님의 거룩은 부정한 것을 만나 그것을 깨끗하게 하십니다.”
나병환자는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손을 내미셨습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순간 나병이 떠났습니다. 그는 다시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동일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깨끗해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정함이 예수님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이 우리의 부정함을 제거합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나아갈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죄를 숨기지 말고 예수님께 가져가십시오. 우리의 실패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상처와 부정함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리고 믿으십시오.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리고 예수님의 은혜로 깨끗하게 된 우리는 이제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눈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보기에 부정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은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고 싶은 사람이라도 예수님은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사람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입니다. 죄인을 예수님께 데려가고, 상처 입은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가고, 소외된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가고, 우리 자신도 날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으로 나아갑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정한 자를 깨끗하게 하시는 거룩한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을 가지고 한 주간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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