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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6:12, 14-15, 에베소서 3:31-32
제목: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세번째) - 용서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에베소서 3: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저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교회를 다니게 되었을 때 제일 먼저 들었던 말이 당신은 죄인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용서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도 기본적인 전달은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 받아 구원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도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는 경우에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당신이 죄인이라는 말을 거북해 합니다. 어떤 경우는 화를 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기에 반드시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전해야 합니다.
목사가 교회 출석하는 사람들 중에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하는 기준도 동일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 믿음으로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교회에 출석하면서도 구원 받은 신자로 생각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을 한번도 하지 않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입니다. 
친구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 한번은 목사님이 교회를 오랫동안 출석을 하고 계신 분과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교회에 다니는 동안 회개를 해본적이 없다고 말하면서, 왜 목사들은 설교에서 너무 자주 죄 용서를 받으라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이 말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분에게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려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며, 예수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죄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분은 자신을 죄인이라 한 것에 대해 굉장한 거부감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오늘은 먼저 '죄를 용서하다'의 의미가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설교하겠습니다. 
우리의 관계성의 문제는 죄를 용서 받고 용서하는 것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에서부터 교회 식구들 간의 관계성까지 그리고 가정에서 가족 간의 관계도 죄의 용서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가 무엇이고,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1. 성경에서 알려주는 "죄를 용서하다"의 의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1) 우리는 먼저 죄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용서받음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누구에게 죄를 지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죄 지은 자가 용서를 구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죄란? 단순히 도덕적 잘못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말해 주는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정확하게는 죄란  과녁에서 빗나가거나 과녁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16:9에서는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 죄 임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2:37-40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는 것이므로 죄가 되는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우리가 지은 죄는 하나님의 뜻에 이르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방향에서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는 말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죄인인 우리가 죄를 용서 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주의해야 하는 것은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죄는 원죄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살고 있는 것에 관련한 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죄는 우리 성도들을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깨뜨리는 문제이고, 또 한편으로는 성도 간에 지은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우리의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주제입니다.

1.2) 우리가 죄인임을 알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죄를 용서하다는 말은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죄를 제거하다, 덮어주다, 죄나 빚을 탕감하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통회하는 심령으로 찾아오면, 죄를 제거 또는 죄를 덮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동물의 희생제사와 화목제물을 통해 용서를 하셨습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은 지은 죄를 고백하는 자들에게 예수 십자가를 통해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는 용서는 심리적이거나 말로만 하는 위로의 용서가 아닙니다. 아들의 십자가 희생의 피를 우리 대신 지불하신 용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의 십자가 속죄를 믿는 죄인들에게 용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2. 사람 간의 죄의 용서는 용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를 반사하는 것입니다. 
죄는 사람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함으로써 이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용서는 하나님이 죄인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으로 먼저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를 믿는 모든 자에게 아무런 조건없이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이 용서를 먼저 하나님께 받은 자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죄를 고백하며 회개를 하면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느 경우에는 나는 정말로 용서를 받았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달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달은 어느 날은 보름달이 되기도 하고 하현달이 되기도 하고 그믐달이 되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용서의 빛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반사하는 정도에 따라 다르게 보여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작건 크건 용서를 반사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에베소서4:32) 그리고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데서 자신이 정말로 용서를 받았고 마지막 날에 용서를 받을 것이라는 것을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못하는 자라면,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적이 없다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 자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가 그와는 상관없는 것이 될 것입니다.

3. 참된 용서를 실행되는 곳에서 일어나는 실질적인 특징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에게 용서를 잘 드러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1) 용서는 대가를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손해를 감수하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형제자매 간에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에게 상처준 사람이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한다고 하면서 조목조목 내가 겪었던 마음의 아픔을 다 말하거나 너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게 하는 말을 하여 대가를 치루게 하는 것은 용서가 아닙니다.
제게 있었던 일입니다. 제 딸이 운전을 배우고 처음으로 차고에 주차를 하다가 차고 입구를 박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것에 대한 딸의 잘못을 용서한다고 말을 하는 것은, 제가 차고의 입구와 차가 부서진 것에 대한 손해를 내가 감당하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는 용서를 해 줄께 하면서 수리비를 요구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생각날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것은 용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은 우리가 당한 손해를 우리가 감당하며 그 잘못을 덮어 잊어 버리겠다는 것임을 잘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지은 죄를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이 감당하셨고,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습니다(시103:12).

3.2)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를 하였다면 그 용서는 회복을 가져와야 합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였어. 하지만 나는 그 사람하고 대화나 교제를 하고 싶지는 않아."라고 하는 것은 용서를 한 것이 아닙니다. 용서를 함으로써 죄를 지은 자와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관계가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면 자신이 행한 용서를 다시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이었을 때 사랑하는 아들을 주심으로 우리와 화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인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원수에서 자녀의 관계로 관계성이 상승하였습니다.

3.3) 용서는 인간적인 노력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정말로 용서하기가 어려울 때, 우리는 용서를 우리의 의지에 의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고자 할 때, 그 시작은 언제나 하나님께 받은 용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감사하는 데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힘으로 용서를 하는 것은 정말로 어렵습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용서하여 나에게 죄 지은 자를 사랑하는 관계성까지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불가능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용서를 묵상함으로 은혜를 받아 하나님의 용서의 풍성한 은혜를 넘치게 하는 것뿐입니다.

3.4) 그러나 용서는 무조건적으로 불의를 덮는 행위가 아닙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으로 죄를 용서하지(덮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죄를 위한 희생제물로 주시어 십자가에서 당신의 사랑과 공의를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려 아들을 내어주신 것이며, 십자가의 공의는 죄의 대가를 치루신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죄를 용서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여 그 죄(잘못)를 없애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불의한 모습을 덮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불의함을 덮어주는 용서를 하여 불화가 교회와 가정에 직장에 있게 된다면, 올바른 용서를 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성경이 권고하는 용서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그리고 사람 간의 관계가 회복되어 성도들의 신앙에 유익이 되는 사랑과 공의가 증진되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는 정전 협정(불화의 원인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는 협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해주는 용서가 성취되기 위해서는 불의한 자가 회개를 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이 불의를 포기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를 불쌍히 여기며 기도해야 합니다. 아직은 용서가 이루어지는 열매를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먼저 용서를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 지은 자와의 관계는 회복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용서하고자 하는 자가 해야 할 일은 불의한 자에게 회개를 촉구하여 진리로 돌아오게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의함을 지속할 때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그 상황은 우리 마음을 상하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더 용서가 쉽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마음에서 생기는 미움과 보복하고자 하는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며 내적인 치유를 받으며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셔야 합니다.

3.5) 마침내 용서를 이루게 되면, 용서한 자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형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는 신자들은 언제나 자유가 없을 것입니다. 마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용서가 있는 교회는 하나가 되고 용서가 없는 교회는 분열한다는 것을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4. 오늘 말씀에 대한 올바른 해석입니다.

마태복음 6: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마태복음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 말씀을 조건으로 생각하여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였을 때,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다고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설명을 드린 것처럼 우리가 죄 용서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이루신 죄의 용서를 십자가에서 성취하신 것 때문입니다.

올바른 해석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은 이것을 받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아주 필수적인 공기와 같습니다. 이 공기가 있어야 풍선에 바람을 불어 넣을 수가 있지만, 마치 내 입의 공기만으로 바람을 불어 넣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신자가 자기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마치 자기에게 공기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을 적용하여 말하면, 그가 자신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적이 없고 용서가 필요하지 않는 자라는 고백입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최후 심판자리에서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가지고 여러분들의 마음에 용서하지 못하는 누군가가 떠오르시거든 실질적으로 용서를 하시기 바랍니다. 
제일 먼저 나는 누구였는지를 기억하십시요. 나는 죄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보화로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두번째로 이 죄인을 용서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세요.
세번째로 기도를 하면서 지혜와 용기를 구하세요. 
마지막으로 실제적인 용서를 실천하세요. 
용서는 참으로 많은 인내와 눈물이 있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한 것임을 명심하십시요. 그리고 그것이 너는 나를 따르려거든 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마태복음 16:24 (마가복음 8:34, 누가복음 9: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기도하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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