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1.2025. 주일설교 이증복 목사
본문: 마태복음 6:1,16-18
제목: 금식에 대하여
마태복음 6:1,16-18
1절-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16절-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17절-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18절-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제 첫번째 금식에 대한 기억은 대학교 시절에 교회 청년회에서 하루를 금식하라는 것에 따라 밥을 안 먹고 라면을 먹은 것입니다. 당시에 금식에 대한 저의 생각은 밥만을 안 먹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금식이 엄청 쉽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후에 금식은 라면과 빵을 포함하여 음식물을 먹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금식하기 전날, 즉 밤 12시 전까지 엄청나게 많이 먹고 금식일 당일 밤 12시가 지나자마자 식사를 하는 식으로 하루 금식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저는 신앙의 초보자로 금식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하였던 행동이었습니다.
1. 금식은 단순히 음식을 먹지 않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회개와 간구, 그리고 겸비한 태도와 슬픔을 드러내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1.1) 구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했던 금식은 ...
첫째로, 죄에 대한 회개와 용서를 위해 금식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7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스바에서 죄를 회개하며 금식하였고, 느헤미야 9장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 공동체는 자신의 죄를 금식하며 자복했습니다.
두번째로, 나라에 닥친 전쟁이나 재난,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며 금식을 하였습니다. 역대하 20장에서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하며 금식했습니다.
세번째는, 개인의 슬픔과 애통의 표현으로 금식을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왕과 요나단이 죽었을 때 금식하며 애통했습니다(사무엘하 1장).
1.2) 이스라엘 백성이 했던 금식은 개인적인 금식과 공동체가 하는 금식이 있었습니다.
첫째, 개인적으로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금식을 하였고, 포로였던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금식을 자발적으로 하였습니다. 개인적인 금식들이 발전되어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일주일에 두 번(월요일과 목요일에 -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날과 내려온 날) 금식하는 날로 정하고 시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떤 바리새인은 성전에서 자신이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는 것을 큰 소리로 기도하며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심지어 금식하지 않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도 있었습니다(마태복음 9:14-17).
두번째는, 공동체가 하는 금식으로 율법에 정해져 있던 대속죄일 하루(7월 10일) 동안 금식하였습니다(레위기 16:29-31, 23:27-32). 그후에 예루살렘이 파괴된 날을 기억하며 하는 5월 7일 금식을 하였습니다(스가랴7:3).
1.3) 본격적으로 신약시대에 교회가 금식을 하기 시작한 기록을 보면, 사도행전 13:2-3에서 바나바와 바울을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교회가 금식했습니다. 사도행전14:23에서 각 교회에서 장로들을 세우려고 금식 기도하며 그들을 주께 위탁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선교사나 장로로 세움을 받는 당사자가 금식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금식하며 기도를 한 것입니다. (불행히도 현대의 교회들은 목사를 교회의 지도자로 세울 때에 교회 성도들이 금식을 하며 그 목사를 하나님께 의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이후에 나오는 교회역사에서는 어떻게 초대교회가 금식을 하였는지에 대한 공식기록은 없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금식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을 하여 지켰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본격적인 금식이 드러나는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금식을 권장하는 2세기부터입니다. 교회들은 유대인들의 월요일 목요일 금식을 바꾸어 수요일(예수 배신의 날)과 금요일(예수 십자가의 날)을 정하여 금식을 강조했습니다. 그후에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금식을 신앙의 유익이 되는 수단으로 장려했습니다. 성 어거스틴의 경우는 금식을 통해 교만을 억제하고 기도를 강화하며 육체의 욕망을 절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의 교회는 구약시대 이스라엘과 같은 제정일치의 사회가 아니어서 더 이상 국민전체가 의무로 하는 금식은 없어졌습니다. 단지, 국가의 위기적인 특별한 상황에서 왕이 금식을 선포한 적은 있었습니다. 중세 유럽 14세기의 흑사병으로 금식과 기도를 국가적인 의무로 선포한 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의 사순절 금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교회에선 금식은 교회와 개인의 자율에 맡기고 있습니다.
2. 이사야 58장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위해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해야 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마태복음 6장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 주시는 금식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사야 58:3-9a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오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금식하는 것) 어찌하여 주께서 알아 주지 아니 하시나이까?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구하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목소리를 상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라(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금식이 아니다)
이것이 어찌 내가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자기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금식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의 머리를 갈대 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외적으로 보이는 금식행위로는 여호와께 열납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책망이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공의를 실천하는 것이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자비를 베풀어 주는 것이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근본적으로 금식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하는 것입니다. 즉, 마음의 태도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금식을 하나님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들을 막는 모든 것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함을 담아 금식을 하는 것입니다. 그중에 제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의 죄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식을 합니다. 두번째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고 있는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 주시기를 위해 금식을 합니다. 세번째로, 나의 나쁜 습관이 있는 육체를 다스리기 위해 금식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있는 큰 어려움을 위해 금식을 하며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58장의 말씀을 통해 금식은 단지 음식을 끊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일을 보여지게 하는 것일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불의를 눈감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하나님의 공의가 자기가 속한 사회에 실행하도록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있는 사회는 사회정의가 더 잘 실현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금식을 하며 어려운 자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시간을 들여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교회 주변에 어려운 가정이 어려움으로 인해 삶을 달리하는 일이 생긴다면 그 일에 대한 책임은 국가도 있지만 교회에도 큰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경우, 그 교회가 과연 금식하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을 것 같습니다.
3.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위해 우리는 먼저 주변을 살펴 공의와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금식을 실제로 하도록 도움이 되는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3.1) 먼저 금식은 단지 음식을 먹지 않는 것만이 아닙니다.
저는 신앙 초보 때 금식이 무엇인지 몰라서 밥 대신 라면을 먹으며 금식을 했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래도 저는 밥을 안 먹고 라면만 먹는 것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우스운 사건이지만 금식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끊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면에서는 금식을 한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좋아하는 연속극을 얼마 동안 보지 않고, 그 시간에 기도하며 성경을 읽는 것도 금식이 될 수 있습니다. 또는 스마트폰 없이 살 수 없는 이 시대에 스마트폰을 하루동안 보지 않기 위하여 상자에 집어 넣는 것도 금식을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남는 시간에 기도를 더 하고, 성경을 더 읽고, 다른 이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들에게는 내가 금식하는 것을 알리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3.2) 금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시면, 진짜로 금식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단, 나이가 많으시거나 질병이 있으신 분들은 음식을 끊는 금식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도 하루 한끼의 금식은 하실 수도 있습니다. 제가 정말로 권하는 사람들은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보다 젊은 분들에게 금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은 젊은 혈기가 있어 죄 짓기도 쉽고 잘못된 습관을 고치려는 노력이 더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은 조금은 더 커다란 목적인 교회와 나라를 위해 금식을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금식하는 방법들입니다.
첫째는, 음식으로 하는 금식은 하루 한끼만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비교적 부담이 적습니다. 마음에 금식에 대한 열망이 생기면, 결심을 하시고 금식을 위한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금식을 위한 기도를 드리는 중에 금식하는 동안에 필요한 기도의 제목과 읽을 성경을 정하십시요. 그리고 날짜를 정하고 금식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금식이 끝난 후에는 금식하는 동안에 아낀 식비는 구제하는 일에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번째는, 온종일 또는 며칠을 하는 금식입니다. 이 금식은 한끼 금식보다 훨씬 힘이 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금식의 준비는 한끼 금식과 비슷하지만 마음의 준비와 날짜를 따로 떼어 놓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위가 약해서 그런지 금식 이틀째부터 헛구역질이 심하게 나왔습니다. 또한 무릎이나 팔 관절이 너무 아팠습니다. 좋은 점이 있는데 겨울에 해도 감기에 걸리지 않습니다. 금식을 하면 온몸이 긴장을 하게 되어 바이러스를 잘 극복하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금식에는 육체의 고통도 오고 힘도 빠지기 때문에 일을 하시면서는 안 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휴가 기간이나 여유가 있는 날을 정하고 하시면 좋습니다. 금식 후에 먹을 죽도 미리 준비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섭식을 잘 하시면 건강에 많은 유익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3일 정도만 금식을 해도 엄청난 식욕이 생깁니다. 그래서 죽을 준비하지 않고 일반적인 식사를 하면 위장 장애가 생길 수 있습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느낌이 들어 계속 먹게 되는데, 만일 죽이 아닌 맵고 딱딱한 음식을 급히 그리고 많이 먹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식도 어렵지만 금식 후 섭식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습니다. 금식은 식욕(위장)을 참으면서 하는 것이고, 섭식은 더 먹고자 하는 욕망(입과 위장)과 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번째는, 나의 나쁜 습관이나 행동을 고치려는 금식입니다. 스마트 폰의 경우는 오후 몇시 이후에는 보지 않는다든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보지 않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기간을 정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1주일 이상이어야 합니다. 이 금식은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성과가 있으면 그 기간을 연장시키면 됩니다. 습관을 고치려는 결심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하는 금식으로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금식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금식에 대한 착각을 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면 즉각적으로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착각과 금식을 많이 여러번 하면 더 경건한 사람이 되는 것같은 착각입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에 방해가 되는 자신의 죄를 회개하거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식을 한 후에도 자랑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러번 금식한 것을 자랑하거나 경건된 신앙의 훈장으로 여겨서는 안됩니다. 40일 금식을 3번이나 한 것을 시카고 성도들이 알고 메디슨 교회의 성도들이 아는 것이 어떤 유익이겠습니까? 그는 이미 상을 받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금식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마시고, 은밀한 중에 보시고 갚아 주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