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26 주일설교.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5:17-26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째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 모독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 마음에 무슨 생각을 하느냐?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그 사람이 그들 앞에서 곧 일어나 그 누웠던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
모든 사람이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오늘 우리가 놀라운 일을 보았다 하니라.
오늘 본문은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고침받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병을 고쳐 주시기 전에 먼저 선포하신 놀라운 선언이 있습니다.
20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중풍병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을 때, 우리는 당연히 예수님께서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난데없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오늘 말씀의 핵심은 예수님이 단순한 병고침의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능력자로서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메시아임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본문을 통해 저는 다음에 나오는 주제들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첫째, 인간의 모든 문제의 근원이 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죄의 문제를 제일 먼저 해결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자신의 죄를 용서 받기 위해 참 하나님으로서 친히 죄를 용서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가야 합니다.
1.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비참은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죄’입니다. 1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치실 때, 갈릴리뿐 아니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율법교사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네 사람이 한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와 지붕을 뜯고 예수님 앞에 달아 내렸습니다. 그들이 남의 집 지붕을 뜯고 중풍병환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내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께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20절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그들의 믿음’은 병자의 믿음이자 그를 기꺼이 업고 와 주님께 내어드린 동역자들의 믿음입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침체와 고통의 때에 나를 주님께로 이끌어 주는 믿음의 동지들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의 동지와 함께 헌신적으로 섬길 수 있는 믿음의 동지가 있어야 합니다. 비록 중풍병자는 환자로서 움직일 수 없는 자였지만, 믿음의 동지들이 있었고 그 믿음의 동지들의 도움으로 예수님 앞에 올 수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담대한 확신에 찬 행동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향해 던지신 첫마디는 “일어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은 분명하게 예수님이 환자인 친구를 낫게 할 것을 확신했고, 바랬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치료하시기를 워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선언하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육신의 고통보다 죄의 문제를 먼저 다루셨을까요? 왜냐하면 인간이 ‘전적으로 타락하여(Totally Depraved) 스스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고, 진노 아래 놓인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건강 문제, 경제적 위기, 가정과 관계의 파탄을 인생의 가장 큰 문제로 여깁니다. 그러나 그것은 증상일 뿐, 진짜 뿌리는 ‘죄’입니다. 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켰고, 이 땅에 저주와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모든 사람은 근본문제는 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중풍병자에게 육체의 치료보다 ‘죄 사함’을 먼저 다루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육체의 건강은 잠시 잠깐 주어지는 안개와 같으나, 죄의 용서는 영원한 생명의 유무를 가르는 절대적 문제임을 기억하십시요.
2.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만이 행하실 수 있는 ‘죄 용서의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예수께서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는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는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들의 신학적 전제 자체는 맞았습니다. “죄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사하실 수 있다.” 창조주를 거역한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것을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정적인 잘못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 눈앞에 서 계신 예수님이 바로 육신을 입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들의 신학적 지식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음을 아는 지식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들의 영적인 눈은 멀어 있어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많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영적으로 눈이 멀어 죄를 용서하러 오신 하나님의 메시아를 거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의 생각을 아시고 도전적인 질문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고자 하십니다(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죄 사함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 아무 말이나 허풍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걸어가라”라고 명하여 실제로 걷게 만드는 것은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능력이 개입되어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24절에서 선언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그리고 중풍병자에게 명하십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즉시 그가 일어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 기적은 단순히 예수님의 병고치는 능력이 있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닙니다.
이 기적은 ‘예수가 곧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죄를 용서할 권세를 지닌 메시아’임을 증명하는 표적입니다. 그래서 이 기적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수 있게 한 것입니다.
3.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은혜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치료하심으로 자신이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분명하게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면 청중들에게 기대되는 반응은 어떤 것일까요?
그들은 “오늘 예수님의 설교와 기적은 정말 은혜로웠다, 하나님 놀라운 분이시다”라고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감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반응만 하고 끝난 것입니다. 물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처럼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은 정말로 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는 죄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을 깨닫지는 못했습니다. 그들 자신들도 죄 문제를 해결받아야 하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중풍병자처럼 죄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 있는 자임을 깨닫지 못하였고,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님께 간구하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날카로운 경고가 됩니다. 우리는 예배의 감동, 찬양의 뜨거움, 기적 같은 삶의 문제 해결을 경험하고도, 정작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서의 진정한 회개와 거듭남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느 설교가 좋은 설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며, 설교를 듣는 사람들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자신이 얼마나 죄인임을 알게 해주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고 싶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죄 사함의 은혜를 알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있는 예배와 설교가 진정한 은혜가 있는 예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참된 실상을 직시합시다.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상의 풍파가 아니라 바로 내 안에 도사린 ‘죄’이며, 내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영적 비참함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십자가에서 단번에 담당하셨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오늘 이 예배의 자리가 단순히 기적을 구경하는 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여러분의 무거운 죄의 침상을 스스로 붙들고 있다면, 오늘 그 모든 죄를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믿음으로 간구하십시오.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용서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 담대히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