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3/26 주일 예배.
죄인과 함께하시는 예수님
누가복음 5:27-32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비방하듯 묻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그때 예수님께서 명확하게 대답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저는 오늘 이 본문 말씀을 통해, 우리를 찾아오시는 예수님이 과연 어떤 분이신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은 외면받는 죄인을 찾아 부르십니다
누가복음 5장 2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1)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단어는 바로 “보시고”입니다.
사람들은 레위를 볼 때 그의 직업과 신분만을 보았습니다.
당시 세리는 로마 정권을 업고 세금을 걷던 사람이었고, 그 과정에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를 민족의 배신자이자 부정한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마치 일제강점기에 일본 경찰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과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외면받고 있는 레위를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레위에게 찍힌 낙인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한 영혼을 보셨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과거와 직업을 보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미래의 제자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라.”
2) 우리는 예수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방식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레위에게 먼저 “네가 잘못한 일을 모두 깨끗이 정리하고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충분히 거룩해지면 그때 나를 따르라”고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비로소 그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레위에게 요구된 단 한 가지는 그 부르심에 대한 순종이었습니다.
누가복음 5장 28절은 말씀합니다.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에게 세관은 단순한 직장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는 생계와 재산과 안정된 삶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실 때, 그는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세관에 앉아 재물만 세던 사람이, 이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베드로 역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물고기를 많이 잡았던 그 아침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의 부르심을 따랐습니다. 저 역시 친구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발을 들였던 작은 부르심에 순종한 이후, 제 인생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3) 부르심에 순종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르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회개는 단순히 입으로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삶의 방향을 180도 바꾸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돈과 자기 이익이 삶의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자신의 안전과 성공만을 위해 살았으나, 이제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변화는 레위가 스스로를 깨끗하게 만들었기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먼저 그를 찾아와 불러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부르심이 주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참된 회개와 충성된 삶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생명의 면류관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4) 레위는 예수님을 만난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5장 29절을 보면, 그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수많은 세리와 죄인들을 초대했습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만 구원받는 데서 멈추지 않고, 주변의 영혼들도 예수님을 만나도록 초대하게 됩니다.
우리 역시 레위와 다르지 않은 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죄 용서함을 받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레위처럼, 우리 주변에서 외면당하고 상처 입은 이들을 품고 주님 앞으로 인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이들은 과거의 허물이나 주변의 편견 어린 시선 때문에 교회 문턱을 밟기 주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레위의 과거를 아시면서도 그 정죄함에 머물지 않으셨듯이,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될 소망을 품고 그들을 기꺼이 초대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하시지만, 죄에 동화되지 않으십니다
1) 예수님의 이 선하신 행동에 대해 불평하는 이들이 늘 존재했습니다.
레위의 집에서 예수님께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시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비난했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당시 유대 사회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단순한 영양 보충의 의미가 아니라, 깊은 관계와 친밀한 교제를 뜻했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의 눈에 예수님이 죄인들과 밥을 먹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거룩함'이란 죄인들과 철저히 자신을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죄인과 가까이하면 자신도 부정해진다고 믿었습니다. 사실 그들의 생각 자체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인간은 약하기에 죄와 가까이하면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거룩함이 얼마나 위대한지 몰랐습니다. 예수님의 거룩은 죄인에게 오염되시는 거룩이 아니라, 오히려 죄인을 찾아가 정결케 하시는 '능력의 거룩'이었습니다.
오늘날 교회도 이와 비슷한 도전에 직면하곤 합니다. 죄인을 불러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고 비방하는 시선들이 세상과 심지어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나타납니다. 어떤 이들은 특정한 죄인들을 향해 교회 문을 완전히 닫아걸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우리 역시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은, 긍휼이 필요한 죄인일 뿐입니다.
2) 여기서 우리는 거룩함에 대한 중요한 영적 원칙을 붙들어 야 합니다.
거룩함이란 '죄로부터의 분리'이지, '죄인으로부터의 고립'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지만, 세상 사람들과 완전히 단절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직장 동료와 함께 식사하고, 이웃과 대화하며, 믿지 않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듣고, 고민을 나누며,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세상과 소통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때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세상의 풍조에 동화되기 위함이 아니라, 그 한복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거룩함을 삶으로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3) 세상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에 전혀 물들지 않는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언제든 유혹에 넘어갈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약점을 알아야 합니다. 돈, 명예, 쾌락 등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유혹의 자리를 분별하고, 일부러 시험에 드는 자리에 걸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은 그저 ‘세상에서 잘 노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혼 유익을 구하고, 그들이 참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게 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4) 그렇다면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비쳐야 하겠습니까? 무조건 강압적으로 율법을 들이밀며 전도해야 합니까? 직장 모임이나 이웃과의 소통은 담을 쌓은 채 강제로 교회 예배에 참석하라고 윽박질러야 합니까? 결코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치고,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이 75%에 달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로 '교인들의 인간이 덜 됐기 때문이고, 두 번째로는 '너무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태도'를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남을 이용하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먼저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한 발짝 먼저 섬기고, 먼저 용서하며,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것이 바로 세상 속에 살되 세상에 동화되지 않는 참된 거룩입니다.
5) 그러므로 이웃을 탓하기 전에, 지금 당장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받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우리의 이기적이고 완악했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모습 때문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가 세상에서 비방과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메디슨 한인 장로교회가 세상을 향해 진정한 복음의 빛을 비추기 전에, 우리 자신의 허물을 먼저 회개하며 낮아져야 합니다.
6) 우리의 선한 삶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격과 섬김이 우리를 구원하는 공로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오직 전적인 그리스도의 은혜로만 주어집니다. 다만,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변화된 삶의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입니다.
3.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시고, 회개시켜 다시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누가복음 5장 31-32절을 보십시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은 스스로를 '의사'에 비유하셨습니다. 의사는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여기서 병든 자란 곧 '죄인'을 의미합니다.
죄는 단순히 도덕적인 실수가 아닙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괴하고, 인간을 영원한 죽음으로 끌고 가는 무서운 영적 질병입니다.
그런데 가장 비극적인 점은, 자신이 병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랬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손가락질하며 “저들이 문제”라고 여겼지만, 정작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썩어 문드러졌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아주 건강하다고 착각했기에, 바로 앞에 계신 참된 의사이신 예수님을 외면했습니다.
하나님께 진정한 은혜를 받은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자신의 죄를 깊이 자각하고 애통하며 주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은혜에서 멀어진 사람의 특징은, 남의 티끌은 날카롭게 지적하면서 자신의 눈 속에 있는 거대한 들보는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 23절은 선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는가?” 레위는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고 주님의 부르심을 기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거절했습니다. 자신의 영적 병을 고칠 의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사명과도 직결됩니다. 교회는 죄인들을 정죄하고 돌을 던지는 재판정이 아닙니다. 교회는 죄인이 주님을 만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복음의 은혜 안에서 새사람으로 빚어지는 생명의 공동체입니다.
그렇다고 교회는 우리를 그 안에만 꽁꽁 가두어 두는 울타리도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교회 안에서 우리끼리만 만족하고 안주하게 하시기 위함이 아닙니다. 물론 우리는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배우고, 뜨겁게 예배하며, 서로를 격려하며 믿음이 자라납니다. 교회는 영적 훈련장이자 보호처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들고 나아가는 전초기지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가정으로, 일터로, 학교와 이웃의 삶의 자리로 보내셨습니다. 바로 그 보냄 받은 현장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경험한 용서의 기쁨이 가정에서의 진정한 용서와 화해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위로를 얻었다면, 세상 속에서 낙심하고 지친 이들을 위로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세움을 입었다면, 삶의 자리에서 그 말씀을 실천해 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한없는 사랑을 받았듯, 그 사랑을 이웃에게 아낌없이 흘려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지만, 세상 한복판으로 파견된 하나님의 대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 은혜를 세상 속에서 삶으로 드러내고 있는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이 조롱받고,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으며, 세상과 다른 길을 걷기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님께서 먼저 그 험한 죄인의 자리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으며, 부활의 영광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주님의 은혜를 힘입어 세상 속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직장 동료가 우리의 정직한 태도를 통해 예수님의 성품을 엿볼 수 있습니다. 가족들이 우리의 인내와 사랑을 통해 복음의 능력을 체감할 수 있습니다. 이웃들이 우리가 건네는 작은 친절과 진실한 위로를 통해 교회와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울타리 안에만 머물러 있지 마십시오. 교회에서 받은 풍성한 은혜를 품고, 세상 속으로 걸어 나가십시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우리를 모으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변화시켜 다시 세상으로 보내시는 데 있습니다.
4. 핵심 적용
오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세 가지로 적용합시다.
첫째, 나는 예수님 앞에서 치료가 필요한 병든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남의 허물과 죄를 지적하기 전에, 먼저 내 자신의 눈먼 것과 연약함을 보십시오. “나는 이만하면 괜찮다”는 자기 의를 내려놓고, 오직 의사이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둘째, 죄인을 멀리하지 말고 품되, 죄에 동화되지 않아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기피하지 마십시오. 다만 그 관계의 목적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물에 섞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어둠 속에 빛 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내기 위해 다가가야 합니다.
셋째, 교회 안에서 받은 은혜를 세상 속 삶으로 증명해 내야 합니다. 가정에서 먼저 용서하고, 일터에서 정직하게 수고하며, 이웃을 진심으로 섬기십시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삶이 침묵 속에서도 강력하게 예수님을 가리키는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5.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과 함께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죄를 방관하거나 옹호하기 위함이 아니라, 죄인을 진정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으로 우리를 찾아오셨고, 우리를 회개시켜 새로운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 주변의 외면받는 영혼들을 손가락질하지 말고 품어야 합니다. 세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되 세상의 방식에 물들지 말고, 오직 우리의 거룩하고 진실한 삶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 자신도 여전히 은혜가 필요한 연약한 죄인임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의 평생에 걸쳐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시고 새롭게 하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치료하시는 은혜를 덧입으십시오. 그리고 그 은혜를 힘입어 세상 속으로 담대히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는 귀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